미루는 것을 “치명적인 죄” 라고 규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적어도 우리의 본문은 미루는 습관의 한 형태가 가장 치명적인죄일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것은 미루는데 전문가인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크게 찔림을 받게 합니다. 적어도 우리 중 일부는 다가오는 마감일 앞에서 미루고 싶은 유혹을 쉽게 받곤 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마감일을 맞이할 때는 어떨까요? 예를 들어, 2019년 12월 2일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이라고 절대적으로 확신 한다면 우리 삶이 현저히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로마서 13장을 설교하는 이들은 만일 그리스도께서 내일 재림하신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다른 모습과 형태를띠게 될지 우리 청중들과 우리 자신들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우선순위를 재정비해야 할 시급함을 느낄까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를 정확히 안다면 우리가 사람들을 다르게 대할 까요? 만약 그들이 12월 2일에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어떤 이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그전 주에 몰아서 해보려고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단순히 그들의 모든 욕망과 환상을 탐닉하면서 마지막 날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도 그리스도께서 언제 오실 지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 천사들조차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이 언제 끝날 것인지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을 공유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정확한 지식의 부족이 때때로 일부 로마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영적 무관심을 초래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대한 바울의 강조와 함께,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그러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일부 로마 기독교인들은 그들의삶에 대한 하나님의 법을 대부분 무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말씀으로 로마에 있는 신자들에게 윤리적이고 영적인 긴급성을 주입하려고 합니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세부 사항에 몰두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 연도의 시작”인 강림절 첫주일에 바울은 하나님의 양자된 아들과 딸들에게 신실한 생활을 하고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끊임없이 기대하며 살라고 권유합니다.
이번 주일의 Lectionary 에서 지정한 서신서 공과에서 바울은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현실에 따라 우리의생활 방식을 형성하기를 원하신다고 주장합니다. 성령께서 예수를 따르는 이들에게 “잠”에서 “깨어나라”고 부르십니다. 결국로마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이 우리가 처음 믿었을 때보다 지금이 더 가깝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녀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교회 교인들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반영하지 않는다고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일부 로마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완전히 깨어 있지 못하다는 것도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그러한 영적 나태함에 빠질 시간이 없다고 경고합니다. 그것은 확실히 로마 교인들에게 적용되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비록 그들의 생애 안에 재림하지 않으셨지만 그들은 어쨌든 “빌린” 시간에 살고 있었습니다. 결국, 바울이 아마도 이 편지를 쓴 직후, 로마 황제 네로는 모든 기독교인을 로마에서 쫓아냈습니다. 그 박해에서 죽임을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지하로 숨어야 했습니다.
로마서 13장을 설교하고 가르치고 듣는 사람들 대부분은 로마 교인들처럼 극심한 핍박의 위협 아래 살지는 않지만 우리 또한역시 “빌린” 시간을 삽니다. 결국, 그리스도께서 우리 중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오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중 누구도살아서 오늘 오후를 보게 될 것이라고 완전히 확신할 수 없습니다.
최근에 나의 좋은 친구 브라이언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와 같은 동갑으로 61세에 불과했습니다. 육신적으로 건강했고 영적으로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브라이언이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로들어가는 그 ‘구원’이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가까웠다’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빌린 시간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 특히 우리의 관계들은 이 지상에서의우리 시간이 짧다는 사실을 어떻게 반영합니까? 본질적으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깝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우리의 동료 그리스도인들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과원수들까지도 사랑으로 대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사실 우리가 다른 이들에 대한 다양한 의무가 있지만 서로에 대한 최고의의무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서로 사랑하는 빚 외에는 그 어떤 빚도 없게 하라” 권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사랑을 결혼을 계획하거나 데이트하는 사람들이 갖는 감정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적 사랑은 무엇보다 행동과 태도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릴 대하신 것 처럼 우리도 우리 이웃을 대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이웃을 하나님께서 보시는 시각으로 보고 하나님의 가장 좋은 것들이 이웃에게 임하기만을 원합니다.
바울은 8절에서 그러한 사랑이 하나님의 법을 성취한다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사랑에 대한 우리의 가장 높은 의무를 이행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설명하는 다른 의무들도 성취하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하나님 계명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이 말하는 “정결하고 순결한 삶”을 삶으로써 우리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이 언제라도 오실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이웃을 결코 “비하하거나 모욕하거나 미워하거나 죽이지” 않음으로써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방법과 또 다른 수많은 방법으로 우리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합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을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우리 모두가 빗나갈 때가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너무 바빠서 주변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은 자녀들이지만 우리 사랑에대해 받을 자격이 없거나 관심도 없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간이 짧고 사랑하는 게 힘들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우리가 본래 하나님 앞에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기억합니다. 하나님의 선택 받은 자녀들이지만 분명히 그분의 사랑을 받을 만한 일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아직 반역적인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사시다 죽으시도록 그 분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바울은 우리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사랑이 어떻게 형성하는지 계속해서 말씀 합니다. 우리 시대가 짧음을 아는 사람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습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본받는 미덕으로 우리를 덮으시도록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 받은 자녀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시는 방식과 일치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는것을 의미합니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다가 새 생명으로 부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가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것을 멸하셨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인으로 삼도록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13장 전반에 걸쳐 바울은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을 묘사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악을 미워하시고 선을 붙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양자된 자녀들이 악을 미워하고 선을 붙들라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원수들이 배고파 할 때 먹이고 그들에게 마실 것을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학대하는 자들을 그렇게 대하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3장과 같은 본문을 가르치고 설교하려면 일종의 줄타기 균형 잡기가 필요합니다. 한편으로, 말씀 선포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할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고 안주하는 영적 나태함으로 부터 우리 청중들 (그리고 우리 자신!)을 일깨우기를 원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예수께서 곧 오셔서 새 땅과 새 하늘의 기쁨과 영광으로 이끄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지나치게 공포에 빠지게 하지도 않습니다.
예화 아이디어
2013년 12월 17일 Harold Camping에 대한 New York Times 사망 기사에서 T. Rees Shapiro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2011년 5월 21일 이후에도 지구의 생명이 계속되었다는 사실은 Mr.Camping과 그의 추종자들과 그의 라디오 프로그램의 수백만 청취자들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 주었다.”
Mr. Camping은 2011년 5월 초 NPR과의 인터뷰에서 “’그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의 세상 종말 메시지를 퍼뜨리기 위해수천만 달러를 썼다고 알려졌습니다. 그의 5월 21일 예측은 미 전국의 5,000개 이상의 빌보드에 도배되었습니다. 그는 61개 언어로 인쇄된 1억 개의 팜플렛을 배포했는데 그 중 일부는 ‘세상의 끝이 거의 다가왔다!’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의 자원봉사자들은 Washington D.C 시내를 걸으며 행인들에게 “그 날을 기억하라”고 상기시키는 전단지를 나눠주는 것을 포함하여 전국을 찾아 다녔습니다.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있는 신학대학원의 종교학 교수인 Jay Johnso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Mr.Camping의 대담한 예언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더욱 넓고 빨리 퍼져 나갔다. 그의 깊고 묵직한 목소리로 Mr. Camping은 청중들에게 심판의 날이 엄청난 지진과 함께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참 그리스도인들이 휴거를 경험할 것이라고 말했다. 총 2억 명의 구원받은 영혼이 하늘로 올라갈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들의 구원을 기다리며, Camping의 추종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집을 팔고 직장을 그만두고 저축 계좌를 고갈시켜 그의 지구 종말 캠페인 자금을 지원했다.”
“5월 21일이 왔다가 지나간 후, Camping 은 다음 날 캘리포니아 집에서 놀라고 실망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왔다. 그는 5월21일을 ‘보이지 않는 심판의 날’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계산이 6개월 앞섰다고 말했다. 그는 진짜 아마겟돈이 2011년 10월21일에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잘못된 예측이 추종자들 사이에서 그의 평판에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그는 상관 없다고 일축했다. ‘올해 10월 21일, 전 세계가 멸망하고 기억할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을 텐데 내 평판이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나는 누구에게 어떤 유산을 남길 것인가?’ Camping 씨는 2011년 온라인 종교 잡지 Killing Buddha에 이렇게 말했다. ‘내가 바라는 유일한 한가지는 내 예언을 듣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매달려 부르짖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예측이 이루어지지 않자, Mr.Camping은 그의 라디오 활동에서 은퇴했다.”
로마서 13:11-14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