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1-12 주석

팔복에서 말하고 있는 모든 특성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Mr. 팔복 혹은 Miss 팔복이라는 사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글쎄요. 아마도 그는 한결같이 친절하면서도 약간 부끄러워하는 편이어서 각광 받는 것을 피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는 항상 자신의 행동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달성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경시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지체없이 도움을 주는 사람이지만, 루이지애나 해안에서 발생한 기름 유출에 대한 뉴스를 들을 때나 시리아에서 가스로 인해 숨진 아이들의 사진을 볼 때 곧 우울감에 빠지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 사람은 종종 괴로워 보이고, 눈물을 흘리기 직전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아무것도 으시댈 수 없는 사람 말입니다.

그는 종교적으로 투명한 사람일 것이고, 그의 마음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께 깊이 집중되어 있어서, 그가 하는 모든 일을 제단에 드려지는 제물로 삼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 사람은 삶의 많은 측면에 대해 끊임없이 안절부절하고 불만족스러워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는 환경 단체에 지속적으로 돈을 기부하고, 고속도로 청소에 자원하고, 노숙자를 돕기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만찬에서 빈곤층이나 가난한 사람들이나 오피오이드 약물 중독자, 음란물 중독자들을 돕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요컨대 Mr.팔복 혹은 Miss 팔복 씨는 항상 웃음으로 가득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종종 그는 그의 얼굴에 진지한 걱정의 표정을 짓거나 그의 눈에 동정의 눈물로 가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는 전형적인 칵테일 파티에 가담하는 것보다 지구 기후 변화나 빈곤과의 전쟁이라는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곤 할 것 입니다. 그는 일부 사람들이 그를 향해 순진하게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나간” 사람이라고 비웃을 만큼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일에 바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몇 년 전에 어떤 TV 설교자가 “The Be (Happy) Attitudes”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을 때 그토록 웃음거리가 되었던 이유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행복이 반드시 뒤섞인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Mr. 팔복 씨 또는 Miss 팔복 씨는 문제, 원인 및 정치에 대해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말썽꾼이자 귀찮은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는 항상 다른 사람들을 위해 더 나은 것에 굶주리고 목말라 있습니다. 그래서 어쨌든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Mr. 팔복 씨나 Miss 팔복 씨가 조롱당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알다시피, Mr. 팔복 씨나 Miss 팔복 씨의 삶은 바쁘고 안절부절 못하며 심지어 성가신 삶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가 천국에 들어 가려고 그렇게 노력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았기 때문이고, 그들은 하나님 나라보다 못한 것들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팔복에는 기이한 역설이 흐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은혜를 입은 예수님의 추종자들은 이 세상에 정말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마태복음 5장은 “이 세상은 내 집이 아닙니다. 나는 단지 지나갈 뿐입니다”라고 했던 옛 신앙인의 말을 확증해 줍니다.

예수께서 예언하신 대로 우리가 조롱과 박해를 받는다면,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세상의 뜻을 따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통념에 도전하기도 하고, 기존에 있는 권세들을 뒤흔들 것입니다. 그러나 팔복은 우리에게 세상을 피하는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이며, 이 세상은 우리의 집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나 문화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거나, 정치에 눈을 감고 있고, 우리의 환경이 오염의 지옥으로 빠져들어 가는 현실을 도외시 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에 팔복은 우리가, 머지 않아 다가 올 달콤한 나라에서가 아니라, 바로 여기서 하나님의 의에 굶주리고 목말라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샬롬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 온유해야 하며, 우리가 온유하다면 땅을 상속받으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아시다시피 땅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과 이 땅에 대한 말씀을 종종 뒤섞어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의 마음에는 이분법이 없습니다. 하늘과 땅이 합쳐질 것이기 때문에 하늘과 땅 사이에서 선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컨대, 당신이 예수님이 보시는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당신은 복이 있습니다. 당신이 이미 이러한 방식으로 느끼고 행동하고 살고 있다면 축하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왕국에 관해서 당신이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텍스트 노트

예수님이 누구를 가르치셨는지에 대해 오랜 성경적 논쟁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하신 말씀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만 말씀하신 것입니까? 많은 학자들은 군중 가운데 일부가 예수의 말씀을 엿 들었을지 모르지만 예수가 제자들로만 주위에 원을 그리며 지금 그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가 두 가지를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첫째, 이 말씀이 제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은 팔복이 하나님 나라의 회원이 되기 위한 입학 요건이 아니라, 대신 당신이 은혜로 구원받은 후에 살아 갈 하나님 나라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군중에게 이 말씀을 하셨다면 팔복을 이렇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아, 들어라! 당신이 내 편이 되고 싶다면, 내가 당신을 천국으로 데려가길 기대한다면, 여기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당신은 착하고 자비로워야 하고,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 그러나 마태복음 5장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갑작스러운 은혜의 초대를 통해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즉, 팔복은 당신이 은혜를 획득하는 방법(물론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이 아니라 당신이 은혜 받은 후에 어떤 삶을 살게 될지를 보여줍니다.

예화 아이디어

세상 사람들이 볼 때 팔복은 지독할 정도로 지루하고 우울한 삶의 공식처럼 보일 것입니다. 대신 C.S. Lewis가 쓴 것처럼 우리 주변 사람들은 돈과 섹스와 술과 호화로운 삶이 갖으면 갖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팔복은 터무니없이 어리석은 소리로 들립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주말에 자기를 해변에 초대한 것이 무슨 뜻인지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차라리 슬럼가의 지저분한 골목에서 머드파이를 만들겠다고 말하는 무지한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너무 쉽사리 기뻐합니다. 그들은 머드 파이가 실제로 그들과 우리 모두를 기쁘게 할 만큼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하나님이 기쁨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모든 것을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