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주일’ 설교 본문이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멋진 세례 장면 직전인 43절에서 끊어진다는 것이 다소 황당합니다. 저는 이것이 제가 매주 참고하고 있는 렉셔너리 사이트의 오타라고 생각했었는데, 다른 곳에서 확인해 보니 이 본문이 43절에서 끝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본문에 대한 나의 첫 번째 설교 조언은 여기서 멈추지 말고 48절까지 가라는 것입니다. 48절까지 설교하십시오!
본문은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하려고 했던 베드로가 옥상에서 엄청난 변화를 경험한 놀랍고도 은혜로운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요나가 이스라엘 사람 아닌 이들에게 설교하라는 사명을 피하기 위해 한때 도피했던 바로 그 도시 욥바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구약적인 배경과 마찬가지로 베드로도 이방인과 로마의 지배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을 가진 한 도시에서 이스라엘인 사람들이 아닌 어느 그룹에게 설교함으로 유대인들의 음식 규례와 모든 전통을 어기라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가이사랴. 시저빌. 모든 것이 베드로에게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평생 돼지고기와 랍스터와 새우를 멀리했던 사람이 시저빌에서 수 많은 로마인들과 함께 새우 칵테일과 햄을 곁들인 피자를 먹도록 권고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라고 하신 일이 그런 것이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베드로는 그 일을 합니다. 사실, 우리는 사도행전 이야기에서 베드로가 이 점에 있어서 약간 유치했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입니다. 동료 유대인들 면전에서 이방인들로부터 물러났을 때 그와 바울 사이에 이 일과 관련된 큰 언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해결되어 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그것이 베드로에게 충격적인 교훈이었지만.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도착했을 때 이 일이 은혜롭게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여기 있는 것조차 불법인 거 아시지요?” 이것이 그의 첫 마디였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나아졌습니다. 본문에서 그는, 여러분이 43절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간다면, 하나님이 누구도 편애하지 않으신다는 복음에 관한 전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와 사도들이 몇 달 전 오순절에 경험했던 것처럼 확실하고 부인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면서-일단 너무나 놀랐지만 그 놀라움을 진정시킨 다음-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거룩하고 합당한 일을 합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온 가족이 세례를 받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렉셔너리 본문을 10장 마지막 절까지 확장한다면, 마태복음 3장에 나오는 예수님이 요한에 의해 세례 받으셨던 날에 왜 이 본문을 보아야 하는 지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회개의 세례에 응하신 것은 모든 의를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의 핵심 교훈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메시아로 밝혀졌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모든 전통이 다시 정리되고, 생각되고,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John Dominic Crossan이 제안한 것처럼, 마태복음 전체에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고, 그로 인해 이전의 기대가 뒤바뀌어 새로운 이해로 이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예수님의 혈통에 4명의 이방 여인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그 교훈을 시작합니다. 의인 요셉은 마리아의 수치스러운 임신에 비추어 진정으로 의로운 일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 동방 박사가 도착하고, 산상수훈에서 당신이 그런 사실을 알기도 전에 예수님은 새롭고 신선한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율법과 전통을 재정리하고 계십니다.
의가 다시 정의됩니다. 보다 나은 방식으로 말하자면, 의가 하나님께서 줄곧 바라시고 의도하셨던 것과 일치하게 됩니다. 의는-하나님이 창세기 12장에서 이미 아브라함에게 분명히 예언하신 대로-이스라엘 안에 있는 그의 후손들만 아니라, 모든 민족을 위한 축복이 됩니다.
욥바의 상황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스라엘이 열방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님의 교두보라는 사명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들은 우리 모두가 하는 일(그리고 교회가 지금까지 여전히 잘 해내고 있는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편협한 회원 전용 클럽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별로 상관 없는 풍습과 문화적 습관이 유일한 삶의 방식이 되다 보니 그렇게 살지 않거나 살 수 없는 사람들은 환영 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베드로에게 최우선적으로 요구 되었던 것은 어떤 불경건한 관습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 자체에 명시된 것을 어기는 것이었다고 지적할지 모르겠습니다. 특정한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하는 것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때 하나님의 백성을 정의했다면,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의 더 큰 의와 거룩하심으로 인해 그러한 것들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만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기준이 되었고, 그 세례를 통해 우리 인간 사이의 모든 차이가 씻겨 나가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관습, 지위 표식, 성 정체성, 사회-경제적 지위, 그 어떤 것도 세례의 물에서 살아남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를 갈라 놓는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완전히 새롭게 하나 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2017년 새해를 맞아 얼마나 많은 설교자들이 사도행전 10장에 대한 설교를 선택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상기시켜 줄 것입니다. 우리는 심각한 불화와 원한의 해를 보내고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어떻게 대우 받을 지에 대한 커다란 불확실성을 품은 가운데 새해를 맞고 있습니다. 이 땅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다른 사람”으로 간주되는 이들을 무례하게 대할 것이라는 명백한 두려움 말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에게 일어난 일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일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러한 일의 일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일러스트레이션 아이디어
세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번 주일 일러스트레이션 아이디어를 위해 Center for Excellence in Preaching 웹사이트의 다른 부분에 있는 동료 Roy Anker와 그가 The Shawshank Redemption 라는 영화를 통해 관찰한 세례에 대한 요약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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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0:34-43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