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6:1-13 주석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이것이 바로 사무엘상 15장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무엘보다 빨리 그 후회를 극복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사무엘상 16장에서 사무엘은 여전히 슬픔 속에 머물러 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일어서라! 사울 문제는 이미 지나갔다. 이제 내가 택한 다음 왕을 세우러 가자.”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후회” 표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구약성서의 일부 저자들은 이런 표현을 별문제 없이 받아들였던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매우 강조하는 전통(개혁 전통을 포함해서)에 선 사람들은 이런 표현에서 당혹감을 느끼곤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미리 내다보시는 분 아닌가요? 하나님은 우리처럼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당황하는 분이 아니시지 않나요? 하나님이 그 순간에 가용한 정보를 가지고 최선의 결정을 내리신 후 나중에 “실수했다”고 느끼는 분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 모든 신학적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하든지간에, 역사적 사실은 분명합니다. 백성이 인간 왕을 달라고 고집하자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세운 첫 번째 왕, 튼튼하고 힘세고 키 큰 사울은 결국 잘못된 선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울은 영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사무엘은 이 상황을 보며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플랜 B”를 실행하신 듯합니다. 사무엘을 베들레헴, 이새의 집으로 보내시지요.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 하나님이 새 왕으로 택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들은 정말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장남을 보자마자 사무엘은 “이거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들의 ‘잡지 모델’ 같은 겉모습은 보지 마라, 사무엘아. 나는 그들의 복근이나 풍성한 머리카락이 아니라 그들의 중심을 보고 있다.”

아마 사무엘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저는 그들의 마음을 볼 수 없는데요? 두 눈으로 보이는 것뿐인데요!” 그러나 한 명, 한 명 건장하고 멋진 아들들이 지나갈 때마다 하나님은 고개를 저으십니다. 이새는 더 이상 아들이 없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자, 마치 영화 속 반전 장면처럼 이새가 말합니다. “아, 하나 더 있긴 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별 기대도 안 해서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혼자 양치기 일 하고 있죠. 형들을 다 데려오려니 누군가는 양을 봐야 해서요. 저는 형들 중에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 아이를 데려오시오.” 사무엘이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아이, 그 소년이 하나님이 택하신 자였습니다. 성경은 그의 외모가 준수했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이 보신 결정적 요소는 외모가 아니라 마음이었습니다. 설령 다윗이 여러 의미에서 “막내답게” 왜소하고 평범한 외모였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은 달랐습니다. 사무엘은 그 자리에서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하나님의 영이 그 기름과 함께 다윗에게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날부터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길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향해 사랑과 증오가 뒤섞인 극단적인 감정을 갖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다윗을 아들처럼 여기며, 다윗은 실제로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깊은 우정을 나눕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 사울은 다윗을 위협으로 생각하여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혀 여러 차례 창을 던져 죽이려 했습니다. 이후 다윗 자신의 삶에서도 충격적인 죄와 실패들이 이어졌습니다. 밧세바 사건, 그에 따른 살인 은폐, 그리고 그것이 불러온 집안의 비극은 그의 인생을 크게 뒤흔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사무엘상 16장의 이 순간에 다윗은 기름 부음 받은 자로서 ‘메시아’이자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훗날 하나님은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며, 장차 참된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온 세상을 죄에서 구원할 때, 그분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게 될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게 될 것입니다.

그 놀라운 이야기의 시작이 바로 사무엘상 16장에서 일어난 이 극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중시하는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겉으로는 볼 수 없는 마음을 보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십니다. 왜 처음 하나님이 사울을 “잘못” 선택하셨는지, 그리고 이렇게 탁월한 선택이었던 다윗도 결국은 실패와 실망을 안겨주는 인물이 되었는지,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다윗의 실패들이 그가 거둔 성공이나 그의 신실했던 삶의 순간들을 온전히 퇴색시키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의 실패들은 우리를 구원할 참된 ‘기름 부음 받은 자’는 한낱 인간일 수 없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위대한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기 자신도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를 구원하는 일은 바로 또 다른 “다윗의 아들”—참된 메시아—만이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다윗의 등장이라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조차 우리로 하여금 “장차 오실 그분”을 더 깊이 갈망하게 만듭니다.

예화 아이디어

예전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저는 페니로얄 캐스턴Pennyroyal Caxton 성경에 수록된 배리 모저Barry Moser의 다윗 그림 두 점을 특히 좋아합니다. 첫 번째 그림은 골리앗과 싸울 때의 젊은 다윗입니다. 눈빛은 대담하고 당당하며, 얼굴에는 자신감과 약간의 허세가 드러납니다.

두 번째 그림은 밧세바 사건과 압살롬 반란을 겪은 뒤의 다윗입니다. 이제 그의 눈은 아래로 향하고, 젊은 날의 거칠고 당당한 기운은 사라졌습니다. 그는 더 나이가 들었고, 어쩌면 더 지혜로워졌습니다. 그의 모습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부르심은 항상 쉽지 않으며 결코 편안한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온몸으로 배운 사람의 흔적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