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Commentary for Sunday, 10월 9, 2022

시편 111:1~10 주석

저는 최근에 다른 시편 설교 주석을 통해 시편의 시와 잠언이나 전도서와 같은 지혜문학은 성경의 문학 장르에 있어서는 서로 구별되지만 시편과 잠언 사이에는 교차점이 많다는 사실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편 111편 마지막 절은 잠언 전체의 대표 구절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잠언 1장을 읽을 때 그 구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고 또한 그런 관점에서 시편 111편의 나머지 부분을 보아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즉,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Yahweh”를 경외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일단,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것은 단순한 공포나 두려움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다가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해야 할 요소도 가지고 있고, 또한 적절한 경외심이나 합당한 존경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두려움”이 아니라, 경외가 주된 결론입니다. 그것은 우주적 도식 안에서 누가 누구인지를 알고 그에 따라 당신의 삶의 질서를 갖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당신의 사적인 이익이나 편의를 위해 창조되지 않았음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당신이 더 편리하게 일을 진행하면서 당신이 세상을 재창조하거나 다시 주조하거나 재형성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를 얻도록 그 규칙을 마음대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만이 주권자이심을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특정한 방식으로 설정하셨으며,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안에서 무엇이 작동하며 무엇이 작동하지 않는지 분별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인생의 매뉴얼인 율법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율법의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목록은 하나님이 임의로 어떤 것을 정해 놓고 피조물이 그것을 힘들게 뛰어넘는 것을 보고 싶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중력의 법칙이라는 질서를 따르는 것과 같습니다. 법칙은 사물의 존재를 그대로를 드러냅니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중력의 법칙을 무시할 수 있지만, 그러면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입니다. 중력을 무시한다고 해서 중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중력의 법칙은 당신이 순종해야 하는 것이라고 하기 보다 당신이 양보해야 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지혜는 법에 관한 것이라기 보다 현명함을 통해 삶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무엇이 무엇인지 파악한 다음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바람이 부는 데 침을 뱉거나, 자신이 앉아 있는 나뭇가지를 자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거기에는 규칙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어리석은 사람과 논쟁을 벌이려고 할 때, 그냥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미움이 있는 풍성한 잔치보다 사랑이 있는 곳에서 나물과 물을 먹는 것이 낫다”는 속담의 진리를 분별하기 위한 별도의 규칙도 필요

없습니다. 추수감사절 저녁 식탁에서 장난꾸러기 Lloyd 삼촌이 정치적 논쟁을 벌이는 것을 지켜보면서 할머니의 칠면조 고기와 그 안에 채워진 것들과 으깬 감자를 즐기기 보다 그곳을 벗어나 Burger King drive-through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차에서 먹는 저녁 식사가 더 낫을 것이며, 그게 훨씬 즐거울 것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은 세상이 아무렇게나 창조 되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과 같은 혼란이 아닙니다. 아무 의미 없는 소리와 분노를 내뿜으며 무대 위를 서성거리는 햄릿 같은 바보가 아닙니다. 질서가 있습니다. 세상에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살아 가면서 이런 것들을 차차 깨닫게 됩니다.

시편 111편의 마지막 구절에서 얻은 이 통찰이 앞선 아홉 구절의 틀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일을 찬양하고 있고 하나님의 신실한 추종자들은 많은 시간을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 묵상하고, 기뻐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재연해 내고 있습니다. 창조에서만 아닙니다. 구속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 안에서도 동일합니다. 이러한 구원과 구속의 행위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많은 것을 드러내며,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을 맛보게 됩니다. 사람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의 삶에 개입하실 만큼 사람들을 돌보고 계신 하나님이 올바른 삶의 방식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법도와 현명한 통찰력을 주시는 이유는 한 가지 기본적인 사실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번성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들을 피하고 대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면서 기쁨과 환희를 얻는 생활 방식에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처음에 세상이 어떻게 됐는지에 대한 불만으로 끊임없이 좌절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 하나님은 사람들이 일이 잘 돌아가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영역에 들어가기를 원하십니다.

시편 기자는, 성경의 더 넓은 지혜의 전통이 그러하듯,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삶의 도덕적 경계를 더 편리한 곳으로 옮기고 그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로 고통 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이 인생에 있어서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인지 가장 잘 아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거부하는 모든 사람들의 최종 목적지는 파멸과 파괴입니다. 지혜의 시작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기쁨과 번영으로 인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데 있어서 하나님보다 나은 분은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전체를 창조하신 장본인이시기 때문입니다.

현명함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지혜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어리석음으로부터 도망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그에 따라 삶의 질서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당신의 최고의 관심사이십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행하신 놀라운 일들에 대해 계속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하나님의 창조 세계 안에서 여러분에게 주어진 삶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이해하고 그 그림에 자신을 맞추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일러스트레이션 아이디어

제 동료 Stan Mast가 2016년 시편 111편에 대한 설교 해설에서 우리에게 상기시켰듯이 시편 111편과 같은 것이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하나님의 것들을 찬양하게 하고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역사와 그 안에 담긴 놀라운 일과 권능에 가슴 벅차 오르게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미덕과 하신 일을 찬양하라는 명령을 불쾌하게 여기는 이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남은 생애 동안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가 투구를 받아 쳐서 담장 너머로 홈런 볼을 보낼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관중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타자에게 찬사를 보내고 엄청난 환호성이 솟구칩니다.

9월 말, Beatles의 가수 Paul McCartney가 Stephen Colbert의 심야 쇼에 출연했을 때, 청중들은 지난 50년 이상 동안 수 백만 명에게 음악을 통해 감동을 선사해 준 사람의 작곡 능력을 칭송하면서 그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로 지속적인 기립 박수를 보냈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위대한 예술 작품이나 업적에 대해 누군가를 칭찬하게 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너무 자주 하나님이 하신 일을 깨닫지 못하는 것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더 분명히 볼 수 있다면, 아마도 시편 기자가 우리에게 그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부추길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일어서고, 박수치고, 응원하기 너무 바빴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