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129-136 주석

독자가 성경에서 가장 긴 이 시편의 어느 부분을 펼치든, 내용은 거의 비슷합니다. 이번 주 성서일과는 시편 119편의 22개 연(section) 가운데 17번째 연을 선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기리는 이 서정시의 장대한 길이를 반영하듯, 각 연은 히브리어 알파벳의 순서에 따라 배열되어 있으며, 각 연의 모든 행은 첫 단어가 해당 히브리 문자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1–8절은 모두 א(알렙)으로 시작하고, 그다음 8개 절은 히브리어로 B에 해당하는 문자로 시작하는 식입니다. 우리가 다루는 부분은 פ(페), 곧 히브리어의 P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두운(acrostic) 형식은 암송을 돕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하지만 176절 전체를 암송하려 할 때는, 시 전체의 내용이 비슷하다는 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완곡하게 말해서, 이 시편 기자는 이 시 전체를 통해 하나님의 율법을 향한 열렬한 사랑을 드러내는데, 이런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 대부분은 삶과 사회 전반에서 법과 규칙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도로에는 적절한 속도 제한이 필요하며, 토지 소유자는 자신의 땅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이나 사냥 등의 활동 허가 여부를 규제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규칙이 필요하고, 부모는 자녀의 안전을 위해 일정한 한계를 설정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느꼈듯이, 사람들은 가능한 한 규칙이 적기를 원합니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보이는 것은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의적이라고 여겨지는 규제에 대해 불편함을 느낍니다. 사람들은 도로의 속도 제한을 끊임없이 위반하려 하며, 때로는 “참 터무니없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규칙들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더 많은 계명을 구하며 갈망하는 소리를 듣는 것은 우리에게 짐짓 놀랍게 다가옵니다. 그는 마치 무더운 여름날 탈수 직전에 있는 사람이 물을 갈망하듯, 하나님의 계명을 갈망합니다. 하나님의 법도는 어둠 속에서 비추는 빛과 같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규례를 “기이하고 놀랍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 모습을 보며, 시편 기자는 눈물을 흘립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내가 더 많은 규례를 가지고 있는데, 듣고 싶으냐?”라고 말씀하신다면, 그는 분명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오, 주님! 그럼요, 당연히 듣고 싶습니다! 더 주십시오! 저는 이 새로운 규례들에도 정말 매료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율법을 받는 것은 이 사람에게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선물 받는 것과 같은 기쁨이자, 그야말로 특별한 즐거움입니다.

시편 119편 전체를 관통하는 이러한 태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 근저에는 하나님께서 늘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자 하신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습니다. 이 믿음은 좋은 부모가 가정의 규칙에 대해 자녀가 갖기를 바라는 믿음과도 같습니다. 귀가 시간, 예의와 상호 존중에 관한 규칙, 화목한 가정을 위해 모두가 협력해야 한다는 기대, 시청 가능한 TV 프로그램이나 영화, 그리고 하루 TV/스마트폰 사용 시간제한에 이르기까지—이 모든 규칙은 자녀의 안전과 온전한 성장, 그리고 바른 인격과 책임 있는 사회인으로 자라나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은 하나의 선물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율법과 은혜를 서로 반대되는 개념으로 대비시키지만, 십계명을 비롯한 하나님의 모든 규례와 법도는 그 자체로 커다란 은혜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규칙에 대해 불평하기보다 감사했고, 율법을 생명과 빛의 근원으로 여겼습니다. 율법은 삶을 전면적으로 통제하거나 자유를 억압하고 개인의 잠재력을 제한하려는 장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는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될 새로운 이스라엘 세대에게 전한 하나의 긴 설교입니다. 이들은 약 40년 전 시내산에서 처음 율법을 받았던 이들이 아니었기에, 일종의 “복습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신명기의 영어 제목인 “Deuteronomy”는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에서 유래한 것으로, deuteros nomos, 즉 “두 번째 율법” 혹은 “다시 주어진 율법”이라는 뜻입니다. 반면 히브리어 성경의 제목은 “이 말씀이라”(“These are the Words”)라는 책의 서두에서 따왔습니다. 바로 “이 말씀은” 모세가 백성에게 하나님의 법과 규례를 상기시키고자 전한 선포였습니다.

신명기는 30장에서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생명을 택하라!”고 강력히 권고하면서 절정에 이릅니다. 그들이 들어갈 좋은 땅에서 그들은 선택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름으로 생명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무시함으로 죽음을 택할 것인지 말입니다. 이러한 영적 원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로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정하신 모든 법이 우리의 기쁨과 번영, 그리고 생명을 위한 것임을 깨닫는다면, 그 선택은 절대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나를 위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할 때, 규칙과 계명을 대하는 태도는 물론 삶의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새로워집니다.

예화 아이디어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에서 숀 코너리는 해리슨 포드가 연기한 인디아나 존스의 아버지 헨리 존스 시니어 역할을 맡았습니다. 두 사람의 부자 관계는 오랜 세월 복잡하고 긴장되어 있었으며, 서로 간의 거리감도 상당했음이 작중에서 드러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아버지 존스는 자신이 훌륭한 아버지였다고 주장합니다. 그 장면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에게 ‘밥 먹어라, 귀 뒤 깨끗이 씻어라, 일찍 자라, 숙제해라’ 같은 잔소리를 한 적이 있느냐? 없지. 대신 나는 네게 자립심을 가르쳤다.”

이에 대해 인디아나는, 자신이 아버지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확신만 가질 수 있었다면 차라리 더 많은 규칙과 엄격한 보살핌이 있었어도 좋았을 것이라고 응수합니다. 자녀에게 명확한 기준을 정해주는 것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깊은 관심을 두고 돌보고 있음을 증명하는 방식이 되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시편 119편의 기자가 하나님과 그분의 계명을 바라보는 방식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