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4:11-16, 20-24 주석

마침내 우리는 교회 달력에서 Ordinary Time 이라 일 컸는 시기 끝에 도달했습니다. 그동안 근동의 지리와 역사를 통해 고대이스라엘과 함께 걸어왔습니다– 하란의 이교에서부터 지금은 이교 바벨론까지, 그 안에 이집트와 약속의 땅 사이에서 길 없는 광야를 통과하는 긴 행군이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을 정복하고 그곳에 정착하기 위한 긴 전투도 벌여야 했습니다. 그 긴여정은 여러 면에서 그리스도인의 삶과 유사하므로 우리는 이스라엘을 따라 감으로써 유익을 얻었습니다.

이제 Lectionary에 의해 교회 전례의 또 다른 한해를 다시 시작하기 전에, 우리가 걸어온 신앙의 시작이시고 완성이신 그리스도의 왕 되심을 기념할 때입니다. 그리스도는 어떤 왕이십니까? 그리스도의 왕권을 기념하는 주일에 관련된 모든 본문들은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만 에스겔 본문이 가장 명확하고 포괄적입니다: 그리스도는 목자 왕이십니다.

그것은 놀랍기도 하고 친숙한 비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스라엘 전역에는 다른 왕권 모델들이 있었는데, 그 중 특히 사치에둘러싸여 절대적인 권력으로 인해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권세자들이 다수 였습니다. 바빌론 왕이 가장 두드러진 예였습니다.또한 이스라엘의 최근 역사에서 (본문 1-10절에 설명된 바와 같이) 무능하고 어리석은 왕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양떼를 돌보는 것보다 도망치는 데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최근의 역사 때문에 하나님은 이곳에서 자신을 목자의 왕으로 나타내기로 선택하셨습니다. 그 이미지는 고대 근동에서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때까지 유대 왕들의 부정적인 예들이 드러냈듯이  목자왕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목자 왕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왕이 없었고, 바벨론 포로 기간 동안 흩어졌고, 자신들의 죄와 그들이 겪은 불의로 인해 여러 가지로 상처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예언자 에스겔은 그 유배된 양들 중 하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그를 양 떼의 한 부분과 함께 보내셔서 버림받은 곳과 같은 그 곳에서도 주의 말씀을 듣게 하셨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상처받은 양 떼에게 항상 위로의 말을 한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처음 32장에 걸쳐 에스겔은 예루살렘이무너지고 불타버릴 때까지 가혹한 말로 심판과 형벌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선지자의 어조가 바뀌고 희망과 위안의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였으므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과 성전에 소망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하나님, 그들의 왕, 그들의 목자에 관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에는 특별히 주목할 만한 세 가지 요소가 있는데, 바로 돌봄, 정의, 그리고 왕이십니다. 자신들을 돌보는 것에만 관심이있었던 이스라엘 왕들 (그리고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과는 달리, 여호와께서는 그의 양 떼를 돌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그들이 실패하였으므로 당신께서 친히 양치는 일을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돌봄은 수색과 구조 작업으로 시작됩니다. “내가 내 양을 찾아 돌보리라.” 이스라엘은 앗수리아 침공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바빌로니아 왕국 전역과 그 너머로 흩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셨고, 그들에게 가서 그들을 보살피실 (look after) 것입니다. 여기 “보살피다”라는 단어는 “세부 사항을 조사하다”, 각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목자 왕께서 필요에 따라 각 사람을 돌보실 것입니다.

첫째, 그 분께서 그들이 흩어진 모든 곳들로 부터 그들을 본향으로 데려오며,  여러 나라들로 부터 그들의 본토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오랜 방황 끝에 그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둘째, 주께서 그들의 땅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양식을 주실 것 입니다– 들판과 산과 계곡과 땅의 모든 마을에 있는 풍부한 목초지를 주겠다 하십니다. 그들은 더 이상 음식을 찾아 헤매거나 한 조각의 영양분을 찾아 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시편 23편의 첫 구절을 연상케 하듯 “내가 내 양을 돌보아 눕게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15절)

셋째, 목자왕은 가장 궁핍한 자들을 돌보실 것입니다. 잃어버린 자들을 찾으실 것입니다. 성경에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 55:6). 여기에서 하나님은 완전히 잃어버린 바 되어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잃어버린 자들 조차도 찾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부상당한 자들을 내가 싸매어 낫게 하리라. 그리고 약한 자들을 내가 강하게 하리라.” 선한 목자는 흩어지고 방황하는 양 떼를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할 것입니다. 그분의 돌봄에는 한계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시면서 이러한 보살핌을 영원한 한계까지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목자 왕의 돌봄이 다른 것에 의해 강화되는 16b절에 이르렀습니다. 그분은 상처받은 양 떼를 돌보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해를 끼친 이들에게 공의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선한 목자에게는 상처를 치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는 또한 그 상처의 원인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16절 하반절에 “나는 살지고 강한 자를 멸할 것이다. 나는 공의로양 떼를 칠 것이다.”

하나님은 거기서 이스라엘의 외부 적들 (바벨론과 그 전임자들과 후계자들)에 대해서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형제 자매들의 등을 쳐 살이 찌는 이스라엘 사람들, 즉 정당한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로 부터 동료 유대인들을 밀고 몰아내는 유대인들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17-19절은 그들의 불경건한 생활에 대해 잔잔한 물을 짓밟아 진흙탕으로 만드는 것으로 빗대어 말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사회 불의와 환경 학대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이 포로로 보내진 유일한 이유는 아닙니다. 우상숭배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하나님은 모든 형태의 불의에 관심을 갖고 계시며 이웃을 부당하게 대하는 이들을 심판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것은 구원의 일부입니다. “내가 내 양을 구출하고 그들이 더 이상 희생물이 되지 않게 하겠다. 내가 내 양을 하나하나 심판하여 좋은 양과 나쁜 양을 가려낼 것이다.”

현대 교회에는 자비 사역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사회 정의 사역을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 분열이 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목자 왕은 이 두 가지 모두에 관심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잃어버린 자를 찾고 상처받은 자를 싸매야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길을 잃고 상처를 입게 만든 이들과 시스템에 대한 정의도 추구해야 합니다. 반면에 정의를 추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는 일도 해야 합니다. 둘 중 하나가 아닙니다. 목자왕은 두가지 모두를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이 본문에서 주목할 만한 세 번째 요소, 즉 왕에 대해 살펴봅니다. 주권자인 여호와 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어떻게 돌보실것입니까? “내가 내 종 다윗과 같은 목자를 세워 내 백성을 다스리게 하겠다.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 것이다. 나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과 같은 그 목자는 그들의 왕이 될 것이다. 이것은 나 여호와의 말이다.” (23-24절)

분명히 원래의 다윗은 오래전에 죽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왕좌에 항상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을 부활시키시겠다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에스겔 34장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행할목자 왕으로서 그 보좌에 앉을 누군가를 일으키시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짧게 말하고 있지만, 이 본문에 대한 여러분의 설교에서 좀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예수님이 어떻게 여기에 약속된 다윗의 자손 이신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고, 상처 입은 자를 싸매시고 약한 자를 품에 안으시고 세상에 정의와평화를 가져오신 목자 왕 그리스도의 통치를 송축합니다. 단지 가르침과 기적을 행하심 뿐 아니라, 특히 당신의 양 떼를 위해목숨을 바치심을 통해서 이루신  그분은 이 상처받은 세상에서 우리의 희망이십니다.

예화 아이디어

우리는 최근 혹독한 정치 캠페인을 겪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그 중심에는 리더십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리더를 원하시나요? 엄한 법과 질서의 왕? 아니면 좀 더 친절하고 배려심이 깊은 왕? 이제 우리는 누가 “왕”으로 선출되었는지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 후보자 중 누구도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할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오직 왕이신 예수님만이 이 땅에 흩어진 무리를 목양하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길을 잃고 상처 입은 자들을 깊이 돌보시는 목자이시며, 지배권을 향해 밀고 당기는 살지고 강한 자들을 심판할 힘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왕이십니다. 위로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조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