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5:19-34 주석

여기 우리는 평범한 시간에 갇혀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력의 절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일을 축하하며 보냈지만 이제 불꽃놀이는 끝났습니다. 지금 우리는 일상의 시간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간도 특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걷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약 성경의 읽기의 초점이며 우리 선조들인 고대 이스라엘 족장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로 안내하는 여정입니다. 밀턴의 실낙원(Milton’s Paradise Lost)에 나오는 이 슬픈 말은 이 이야기의 무대를 준비합니다. 여기 죄로 인해 낙원을 강제로 떠나야 하는 아담과 이브가 있습니다.

“세상은 모두 그들 앞에 있었다, 그들이 쉴 곳을 고르는 곳, 그리고 섭리가 그들을 안내했다. 그들은 손을 잡고 방황하는 발걸음을 했다. 그리고 점점, 에덴을 향했다. 그들의 고독한 길을 갔다.”

그들은 하나님의 손을 놓았기 때문에 서로의 손을 잡습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 없이 홀로 “고독한 길”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은 손을 내밀어 언약의 신실함으로 아브람의 손을 잡았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와 그의 후손들과 함께 대대로 함께 걸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이 해야 할 것은, 그들은 “내 앞에서 행하고 흠이 없어야” 합니다. (창세기 12장). 이제 우리는 일상에서 약속의 땅으로 향한 그들의 언약의 여정을 따라가며 “내 앞에서 행하고 흠 없이 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란에 있는 그의 조상의 집에서 가나안의 무덤까지 아브라함과 사라를 따라갔고, 그들의 아들 이삭이 그 조상의 집에서 아내를 취하는 것을 방금 지켜본 우리는 이제 이삭과 리브가의 아들들을 만납니다. 우리는 두 번째 야곱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야곱은 세상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의 초기 역사에서 위대한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구원을 받고 세상을 위한 구원의 근원이 되도록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될 열두 아들의 아버지인 이스라엘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혈통에서 세상을 구원할 그리스도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왕자라고 불렸습니다. 그는 위대한 성인 중 한 사람이었고 신앙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본문에서 그리고 창세기 27장의 이야기에서 그는 악당, 사기꾼, 속이는 자, 계략가인 큰 죄인 인것을 봅니다.

그는 언약의 하나님과 손을 잡고 행하며 언약의 약속에 안식하기보다 하나님과 손을 맞대고 싸우며 하나님과 그리고 사람들과 씨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를 연구하는 것은 유익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나고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방법의 의미에 대한 통찰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우리 삶에 개입하신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워합니다. 왜 하나님은 내 삶에 이런 일을 하셨을까? 왜 그는 그것을 허용 했을까? 하나님은 어디로 가셨나?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임에도 왜 내 삶이 이렇게 힘들까? 아마도

우리는 야곱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아하’ 하는 시간을 보게 될 것이며 하나님이 우리 삶에서 행하시는 일을 갑자기 보게 됩니다.

우리가 야곱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그는 리브가의 태에서 그의 형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엄마들은 꿈틀거리고 기지개를 펴고, 모든 팔꿈치와 슬개골, 엉덩이와 머리, 자궁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일에 대해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이 부드러운 작은 불량배가 털이 많은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세상에 나오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그의 부모는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고 지었습니다. 이름의 문자적인 뜻은 “그가 지옥을 움켜쥔다” 또는 더 비유적으로 그는 속이거나 빼앗는다는 것입니다.

그의 출생 이름은 그의 성격을 드러냅니다. 그의 대한 다음 두 이야기를 보면, 그는 속임수로 세상에서 그의 큰 형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음모를 꾸미고 착취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청취자들은 그 이야기를 알겠지만 장자권이 무엇인지, 창세기 27장의 축복이 왜 중요한지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장자권은 간단히 말해 장남이 동생보다 적어도 두 배,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유산을 가질 수 있는 권리였습니다. 예를 들어, 이삭은 아브라함의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장자의 명분은 그것을 가진 사람에게 가문의 통치자가 될 권리를 주었습니다. 그는 온 가족의 교사, 판사, 장군, 경찰, 의사, 사제인 것입니다. 그래요. 약간 과장일 수도 있지만 요점은 아시겠지요. 넘버원이라는 것입니다(Numero Uno). 최고라는 것입니다!

그 축복은 죽어가는 아버지가 장자권을 가진 자에 대한 강력한 마지막 소원인 것입니다. 고대 사람들은 그러한 축복이 진정한 힘이 있고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하는 거의 마법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은 성공과 번영을 사실상 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장자권과 축복을 모두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성공을 했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지위와 미래는 견고하고 안전해 진 것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혜택이 없다면, 당신은 어느 정도 혼자서 추위 속에서 고된 투쟁의 삶을 살 운명에 처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것을 참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훔치기로 결심합니다.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의 형은 현실적인 사람, 즉석으로 사는 사람, 식욕이 왕성한 “저녁 식사는 뭐야”하는 남자였습니다. 하루 종일 사냥을 마치고 들판에서 나와 몹시 허기진 모습을 보이는 그에게 냉철하고 교활한 동생이 기회를 엿봤습니다. “당신의 장자권을 위해 풍성한 야채 수프 한 그릇을 교환하겠습니다.” 에서는 어리석고 약하고 충동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러한 형을 이용하는 이기적이고 무자비한, 참으로 악한 꼬맹이였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남편의 나이를 이용하여 장남을 속이고 이삭의 마지막 축복을 빼앗았을 때 그다지 낫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마도 더 나빴을 것입니다. 야곱은 어머니의 계략의 도덕성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들킬까 봐 두려움에서 비롯된 몇 가지 초기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시작했습니다. 속이고 거짓말하고 또 속이는 것이 그의 인격이었습니다.

야곱은 매끄러운 피부에 염소 가죽을 덮고 형의 옷을 입고 사슴 고기 맛이 나는 맛있는 염소 고기 구이를 들고 눈먼 늙은 아버지에게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당신의 맏아들 에서입니다.” “빨리 돌아왔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염소를 잡았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에게

형통하게 해 주셨습니다.”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서냐?” “맞습니다.” 그래서 그는 축복을 훔쳤습니다 –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그리고 그렇게 끝났습니다. 야곱이 장자권과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뻔뻔한 속임수로 야곱은 남은 생애를 확보했습니다. 그는 성취했습니다. 그의 권위와 번영이 이제 보장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그처럼 순조롭고 쉬울 것입니다. 한 손에는 큰 시가를, 다른 한 손에는 마티니를 들고 편한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누워서 “내 방식으로 했어”(I did it my way)라고 노래하는 모습을 나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야곱의 인생을 여는 이 에피소드의 아이러니는 그가 어쨌든 그 모든 것을 얻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가 속여서 얻으려고 한 모든 것은 어차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을 것입니다. 야곱은 이미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에서의 장자권이나 이삭의 축복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야곱과 에서가 리브가의 뱃속에서 몸싸움을 할 때 그녀는 너무 괴로워서 하나님께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나이까?”라고 여쭤 보았을때 하나님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리브가에게 야곱이 첫번째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고, 그리고 그녀는 야곱이 자라면서 그 약속을 자주 반복해서 말했을 것입니다. 결국 그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에게 첫 번째 자리를 주실 것이야. 그분이 약속했단다.

문제는 야곱과 리브가가 어떻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수 있는지 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첫째가 되려면 장자권과 축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삶의 본질이고 사회가 일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첫번째로 만드실 것이라면 나는 내 손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야. 나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실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분명히, 그분은 내가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기를 기대할꺼야.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신뢰하기 보다는 거짓말하고 속이고 사기를 치며 자신의 방식대로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을 하게 됩니다. 야곱은 언약의 주님과 손을 잡고 걷는 것 보다, 그리고 주님이 그분의 시간과 방법으로 일을 해결해 주실 것을 신뢰하기보다, 자신의 손으로 문제를 처리하고 우주의 주님과 손을 맞대고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는 장자권과 축복, 권위와 번영, 첫째 자리와 안전 등 원하는 것을 얻었습니다. 순조롭고 쉬운 삶을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지막이며, 순조롭고 쉬운 삶이 아닌, 사실, 그는 정반대를 받았습니다. 그는 장자권과 축복, 자신의 삶을 순조롭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일들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성공과 안전 수단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에서는 축복을 도둑 맞은 것을 알게 되자 이삭이 죽으면 곧바로 야곱을 죽이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는 진심이었고 또한 그는 그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털이 많은 큰 주먹 하나로 마마보이인 동생을 짓밟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도망쳐야 했고 앞으로 21년 동안 그의 승리의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사실, 마지막까지 그의 삶은 필요 이상으로

힘들었습니다. 몇 번이고 그는 “나는 내 방식대로 했고, 그것이 내게 무엇을 가져다 줬는지 봐.”라고 노래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면 이긴다고 생각할지라도 패배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의 삶을 그토록 어렵게 만든 것은 바로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과 씨름을 시작한 순간 부터 일평생의 씨름이 되었으며 마지막에 “나의 날이 적고 고단하도다”(창 47:9)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이 미끄러운 악당의 이야기에 놀라운 복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손을 한 번도 놓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구원하시겠다는 약속과 그를 세상의 구원의 근원으로 만드시겠다는 것을 깨뜨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야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진실로 야곱의 가장 큰 실패의 순간에도 하나님은 야곱을 하나님과 함께 왕자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시작하셨습니다.

한 학자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야곱은 그가 추구하던 권력과 지위를 얻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하나님의 눈에 표를 받은 사람이 되었고 그 결과 그의 성품에 큰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뜻밖의 야곱에게 성장 과정이 강요되어 의식이 있게 되고 도덕적이며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강요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하고 하나님과 씨름하기를 고집했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하면 이렇게 들립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착하기 때문에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그렇게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그것 안에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과 같은 거친 자를 왕자로 만드실 수 있다면 우리 안에서 그분은 그분의 일을 반드시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빌립보서 1:6에서 말한 것처럼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유일한 문제는 우리가 그와 얼마나 싸울 것인가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유롭게 할수 있으며, 그분은 우리를 원형장에서 내쫓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삶을 더 힘들게,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힘들게 만들 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하나님과 손을 맞대고 씨름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언약적 사랑과 신실함으로 손을 잡고 하나님과 동행하시겠습니까?

예화 아이디어

이 메시지에서 저는 Frank Sinatra의 거칠고 자립적이며 거의 거만한 개인주의의 유명한 노래인 “I Did It My Way”를 언급했습니다. 그것은 본문에서 야곱 자신이 처신했던 방식과 오늘날의 강력한 현대적 연결을 만들어 냅니다. 음향 시스템이 좋고 시청각 적인 것의 사용을 높이 평가하는 청중은 메시지 전이나 도중에 시청각적인 것을 재생하기를 원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에 대해 자주 부정적인 언급을 하면 미국 프로 레슬링의 팬이거나 고등학교 및 대학 레슬링에 참여하는 교회의 일부 사람들이 짜증을 낼수 있을 것입니다. 즐거움을 위해 또는 건전한 경쟁을 위해 행해지는 씨름과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려는 야곱의 씨름을 비교 대조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