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3장을 통해 출애굽기의 세 주인공이 바로와 모세와 여호와 하나님으로 확인된 이래 이 내러티브는 바로와의 투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로 하여금 “내 백성을 보내라”고 말하도록 하기 위해 모세를 통해 아홉 가지 재앙으로 자신의 강력한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바로는 고집이 세고 마음이 완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곧 다가올 비참한 최후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출애굽기 11:9-10). 그러나 하나님이 바로의 맏아들을 취하셔서 자신의 “맏아들”을 해방시키시기 전, 실제 유월절이 진행되기에 앞서 유월절 절기를 제정하시는 이야기를 통해 이 내러티브는 잠시 중단됩니다. 유월절 의식이 내러티브를 방해하고 있는 이 현상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연례적인 축제와 행사를 축하하는 것의 중요성은 하나님이 유월절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전체 달력을 재조정하신 것으로 강조됩니다. 고대 근동의 모든 달력은 자연의 순환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새로운 한 해는 자연이 새롭게 성장하는 계절과 더불어 시작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달력의 초점을 자연이나 창조가 아니라 은혜나 구속에 두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능하신 행사에 따라 그들의 날들을 계수해야 합니다. 새로운 한 해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하신 달에 시작되었습니다. 애굽을 통과해 지나실 때 그들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하나님은 새 달력의 첫 달에 이 유월절 축제를 두셨습니다. 이스라엘도 그들의 이교도 이웃들과 더불어 자연의 순환을 축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구속 행위에 생명을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월절 절기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지시하셨습니다. 그들은 주로 어린 양에게 주목했지만, 어린 양에게만 주목해야 했던 것은 아닙니다. 첫 번째 달 열 번째 되던 날, 각 가정의 가장은 양 떼 가운데서 하나를(또는 염소 떼 가운데서 하나를, 5절 참고) 선택해야 했습니다. 각 가정이 어린 양을 준비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가난해서 그럴 수 없을 때는 이웃이 그들의 어린 양을 가난한 그 가정과 나눠야 했습니다. 가장은 가족 모두에게 충분한 고기가 돌아갈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요리할 사람과 상의해야 했습니다. 어린 양은 한 살이어야 했고, “흠 없이” 완벽하고 온전한 것이어야 했습니다. 선택된 어린 양은 첫 번째 달 14 일까지 특별한 돌봄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 날 해가 질 때 각각의 양이 도축되도록 했습니다. 피를 취해 양을 먹는 집의 문틀 옆면과 윗면에 발라야 했습니다. 먹을 때 엄격한 지침을 따라야 했습니다. 도축된 그 날 밤에 그 고기를 먹어야 했습니다. 날 것으로나 물에 삶으면 안 되고 통째로 구워야 했습니다. 메인 코스에는 쓴 나물과 무교병이 동반되어야 했습니다. 아침까지 남기지 말고 남은 것은 태워 재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마치 여행에 늦은 사람들처럼 “겉옷에 허리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하게 서둘러 먹어야 했습니다.”
일부 지시 사항들에 대한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린 양에게 초점을 둔 것은 세상 죄를 사해주실 어린 양의 피에 대한 신성한 예시였습니다. 따라서 흠이나 티가 없어야 하며 절대적으로 온전해야 했습니다. 어린 양을 통째로 굽게 했던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앞으로 40년 동안 보게 될 광야에서 목자들이 그런 방법으로 양을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쓴 나물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애굽에서의 고된 노예 생활을 영원토록 상기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무교병은 이스라엘이 400년을 기다린 후 그러나 바로가 마음을 바꾸기 전에 서둘러 애굽을 떠나야 했던 것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독특한 의복 상태도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가능한 빨리 목숨을 위해 도망쳐야 했던 것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어린 양의 핵심적인 의미와 그에 따른 모든 세부 사항은 11절 마지막에 나옵니다.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이 축제와 연례 행사는 여호와께서 운명적인 그 밤에 하신 일을 가리켰습니다. “그 밤에 내가 애굽을 통과해 지나면서 사람과 짐승의 모든 처음 난 것을 치고 ‘애굽’의 모든 신들을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바로와의 이 모든 싸움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누가 주권자이며, 누가 이스라엘의 생명을 주관하고 있는가?’와 관련이 있었습니다.사백 년 넘게 지배해 온 것처럼 보이는 애굽의 신들이 그들의 주권자였습니까? 아니면, 열 가지 재앙을 통해 애굽의 신들에 대해 자신의 능력을 종합적으로 보여 주시고 바로라는 신의 집안이 망하는 것으로 끝나게 하신 여호와가 그들의 주권자였습니까?
자신의 백성을 해방시키실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오직 자신만이 그들의 유일한 구원자라는 사인을 주시고 그것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그들의 문틀에 바른 피, 그들이 구원받은 자라는 것을 나타내는 어린 양의 피가 그 사인입니다. 그것은 그들을 위한 것이지만 또한, 명백하게,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피를 볼 때, 내가 너를 넘어 갈 것이다. 내가 애굽을 칠 때 어떤 재앙도 너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유월절 축제에 대한 모든 특별한 규칙들은 여호와가 어린 양의 피로 인해 그들을 넘어간 그들의 하나님이자 구원자라는 것을 이스라엘이 기억하도록 고안된 것입니다.
그리고 14절은 그들이 “다음 세대를 위해” 이 성례전적인 축제를 거행하여 그들의 자녀들로 하여금 그들을 자유케 하신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슬프게도 이스라엘이 유월절 축제를 중단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잊었고, 이어서 몰락과 포로와 새로운 속박이 주어졌습니다.
분명히, 유월절은 유대인 특유의 절기이지만, 그 절기는 몇 가지 면에서 기독교적인 적용점을 가집니다. 첫째, 이 본문은 역사적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예배의 중심성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올바른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의 중요성도 보여줍니다. 이 이스라엘의 축제는 그들이 시간에 주목하는 방식, 자신을 정의하는 방식,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방식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축제를 지키는 것만 아니라 제대로 지키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모든 세부 사항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팬데믹 시대를 통해 공적 예배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정 기간 온라인 예배로 버틸 수 있지만, 대면 예배의 부족은 점진적으로 우리의 역사적 공동체의 연속성에 대한 감각을 파괴합니다. 볼테르는 “기독교를 파괴하고 싶다면 일요일을 폐지하면 된다”라는 예언적인 말을 남겼습니다.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한 자세한 지침들을 깊이 생각하면서, 나는 오늘날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방식에 대해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진정성이라는 이름으로 캐주얼하고 자발적이며 비형식적인 예배를 받아들였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배에 대한 그런 관심은 칭찬받을 만합니다. 규칙과 형식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예배의 중심을 빼앗길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형식을 갖춘 의식으로서의 예배가 이 시대의 중요한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실제적인 참여를 대신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돌보지 않았던 것 때문에 하나님을 아프게 하고 화나게 했던 절기와 금식에 대해 이사야를 통해 하신 거친 말씀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노력에 부합하지 못할 정도로 대충하지는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한다고 하셨을 때, “영적” 예배가 성경에 계시된 진리에 의해 구성되어야 한다고 제안하신 것입니까? 저에게 있어서 그 구절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예배/축제의 중요성이 주어진 상황에서 우리가 그것을 행하는 방법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제안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유대인의 달력을 재배열하셔서 한 해가 유월절로 시작되게 하신 방식은 나에게 강한 흥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를 속박에서 구원해 냈을 때 네 생명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나는 네 생명의 근원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회중들에게 이런 질문들로 도전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가족, 문화, 유산, 국가, 선택, 행동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또는 이런 식으로 물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언제 시작되었습니까? 태어날 때였습니까? 어른이 되었을 때였습니까? 결혼했을 때였습니까? 꿈에 그리던 직업을 얻었을 때였습니까? 아니면, 커밍아웃했을 때였습니까? 우리가 자신의 선택에 의해 삶을 세워 나간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결정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에 기초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유월절은 후자를 가리킵니다.
셋째, 유월절과 주님의 만찬이 너무나 분명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유월절 축제 기간에 성찬을 제정하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오래 전에 애굽에서 하신 일을 자신을 통해 이루고 계신다는 것을 매우 의도적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부릅니다. 그 피가 우리에게 있어, 우리를 자유케 하며,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합니다. 그 피 때문에 하나님은 세상을 지나가실 때 새 이스라엘을 넘어 가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삼고 있는 신들을 멸망시키십니다.
일러스트레이션 아이디어
역사적 공동체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데 있어서 의식을 축하하는 것의 중요성은 쉽게 설명될 수 있습니다. 미국의 Fourth of July, 공산주의 시대 러시아의 May Day, 멕시코의 Cinco de Mayo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출애굽기 12:1-14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