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6:2-15 주석

홍해의 물이 다시 합쳐져 출렁이는 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입니다. 미리암의 승리의 노래가 입술에서 채 사라지지도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열두 샘과 일흔 그루의 종려나무가 있는 오아시스에서 물통을 채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 사막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은 다 함께 어린아이처럼 집단으로 떼를 쓰기 시작합니다. 지칠 대로 지친 두 살배기 아이들이 모래 위에 주저앉아 발버둥 치며 울고불고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차라리 우리가 애굽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애굽에서는 모든 것이 그렇게 좋았는데, 하나님은 왜 우리를 여기까지 데리고 와서 이 고생을 시키시는 거야. 모세는 정말 바보야! 이제 우리는 굶어 죽게 생겼어. 이게 대체 무슨 꼴이야.”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백성에게예의 바르게 말해보렴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공손하게 부탁해야지?” 하며 달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밤에는 메추라기를 보내주시고, 아침에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주셨습니다. 매일 그날 필요한 만큼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섯째 날에는 이틀 동안 먹을 양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양식을 이게 뭐지?”고 불렀습니다. 히브리어로만나’(manna)라는 단어는 바로이게 뭐지?”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의 재미있고 독특한 언어적 특성을 짚어보자면, 이 이야기에는 독특하게도 시간 순서가 뒤바뀐 듯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0장에서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으로 안식일을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지금 성경에서 처음으로안식일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장면은 바로 출애굽기 16장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습니다.

 

대대로 노예로 살아온 그들은 “무엇이든 얻으려면 악착같이 붙잡아야 한다”라는 삶의 신조를 배웠습니다.아무도 너를 돌봐주지 않. 그러니 스스로 자신을 돌봐야 한다.”

아무도 신뢰하지 말고, 절대 쉬지도 말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가진 것을 쟁여두라고 배웠습니다. 내일이면 모든 것을 빼앗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이야기의 진짜 절정은 오늘 본문 몇 절 더 지나서 나옵니다. 모세는 백성에게오늘 먹을 만큼만 거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백성 중 일부는 양식을 따로 남겨 두었습니다. 모세가일곱째 날에는 거두러 나갈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도 사람들이 기어코 밖으로 나가 만나를 찾았던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일까요? 그들은 다음 한 주를 남들보다 한발 앞서 준비해 두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입니다.

 

이것은 노예 생활이 만들어낸 거짓된 이야기들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습니다. 성경은 죄의 종이었던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받았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니 우리 역시 거짓된 이야기에 속아의 기준세우며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압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 이야기들은 여전히 우리 안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 탐욕의 노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너는 더 많이 가져야 해.”
  • 성과노예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는 말합니다. “너는 더 많이 성취해야 해.”
  • 인기의 노예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는 말합니다. “너는 아직 충분히 멋지지 않아.”
  • 안락함의 노예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는 말합니다. “너는 아직 충분히 안전하지 않아.”
  • 완벽주의의 노예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는 말합니다. “너라는 존재는 아직 턱없이 부족해.”

 

그러니 만나를 조금 더 챙겨두어야겠지요. 나중에 누리려면 지금 손에 쥔 것을 조금이라도 더 쟁여두어야 할 테니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말이죠, 거짓된 이야기들이 그들의 삶에서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백성에게 진리에 맞게 삶의 방향을 다시 조정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백성들이 만나를 비축했을 때, 만나는 흉측하게 썩어갔습니다.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에게 한 가지 진리를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만나를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일주일 중 엿새 동안 사람들이 집 문을 열고 나가면, 만나가 이슬처럼 땅에 가득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또 다른 진리를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너희는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안식일을 위해 만나를 거두어 두었을 때 놀랍게도 만나가 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곱째 날에도 참지 못하고 만나를 찾으러 나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꾸짖으시며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일을 주신 것을 명심하라. 그러므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동안 먹을 양식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에게 이 진리 또한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악착같이 움켜쥐며 살아갈 필요가 없다. 네가 가진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믿어라.”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 이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하나님은 노예 생활이 만들어낸 거짓된 이야기들이 당신 사랑하는 백성의 영혼을 얼마나 깊이 병들게 했는지를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진리가 단순히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실천되고 경험되어야 한다는 것을 셨습니다. 그리고 진리가 사람들의 삶에서 가장 지배적인 이야기가 되려면, 그것이 매일, 매주 삶의 리듬 속에 반복적으로 훈련되어야 한다는 것 또한 알고 계셨습니다.

 

매일 그들은 배웠습니다. “만나를 의지해선 안 된다.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매주 그들은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안에서 쉬어라.”

 

안식일은 거짓된 이야기들에 맞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리를 가르는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안식일은 우리에게 여전히 같은 진리를 가르칩니다. 우리 또한 만나를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직업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성취를 의지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능력이나 경제적 안정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들은 영원하지도 으며,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 자신을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 여정에도 위험 가득합니다. 그 위험의 대부분은 우리가 의지하게 된만나를 잃어버릴까 봐 생기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인도하십니다. 채우십니다.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끝까지 붙들어주십니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거짓된 이야기들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례받으시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번에는 40년이 아니라 40 동안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사탄은 예수님에게 거짓된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유혹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말고, 네가 스스로 먹을 것을 마련해라.” “기적을 행해서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드러내라.” “고난을 겪지 않고 사역의 결과만 얻어라.”

 

하지만 매 순간 예수님은, 우리가 스스로 해보려다 번번이 실패했던 바로 그 일을 우리를 대신해 이루어 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을 인용하시며 거과 거의 아비를 물리치셨습니다.

광야에서, 예수님 자신이 바로 우리의 진리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지탱해 주시는 생명의 떡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혹 중에 피할 우리의 안식이자 피난처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삶을 다음과 같은 진리에 다시 맞추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를 채우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충분합니다. 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우리는, 더 많이 행하지 않아도, 더 많이 가지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만으로 이미 충분합니다.

 

예화 아이디어

 

2013년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근로자의 40%연차를 다 쓰지 못했으며, 미국 전체에서 무려 1 6,900만 일의 연차그대로 버려졌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삶의 이야기를 어떻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우리가 일과 은퇴(work and retirement)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떻습니까? 이것 역시 일종의 거짓된 이야기일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30년 동안 열심히 일하면서 은퇴라는 목표를 향해 달립니다. 마치 당근을 좇는 당나귀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30년 동안 그 당근을 좇은 뒤에야 깨닫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당근을 즐기는 것을 잊은 채, 그 당근을 쫓는 더 익숙해져 버렸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는 길 당근을 조금씩 베어 물며 가면 어떨까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말입니다. 우리가 애초에 당근을 좋아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비유도 생각해 봅시다. 한 사람이 곳간을 더 크게 짓고 자신의 모든 것을 쌓아두었지만, 바로 다음 날 죽고 말았습니다. 누구도 자신 은퇴 일까지 살아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그리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 되신 하나님께서는 매일 필요한 것을 충분히 공급하시고, 매주 우리에게 안식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방식은 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습니까? 퇴직할 때까지 휴식이나 여행,, 혹은 나중에 하려고 벼르던들을 계속 미루는 은 어떻습니까? 30~40년 동안 은퇴라는 보상을 마지막에 받을 생각으로 악착같이 일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16장에서 이스라엘에게 보여주신 삶의 방식에 부합할까요?

 

연차를 사용하는 것도 그리스도인의 제자도와 관련이 있을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은퇴할 때까지 휴식과 안식을 미뤄두는 것도 그리스도인의 제자도와 관련된 문제일까요? 저는 절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