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8:1~14 주석

몇 년 전, 우리가 한 예배에서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가 쓴 “태양의 찬가”를 교독문으로 사용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주보에 약간의 오타가 있어서 마치 우리가 ‘어머니 지구’(Mother Earth)를 숭배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그래서 우리 교회의 한 보수적인 교인이 저와 예배위원회에 보낸 편지를 보냈습니다. 우리가 다소 ‘뉴 에이지’(New Age) 사상에 빠져들고 있거나, 지구가 살아있는 신성한 존재라는 ‘가이아 원리’(Gaia Principle)를 지지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성 프란시스가 어머니 지구와 ‘달 자매’(Sister Moon)와 ‘바람 형제’(Brother Wind)를 찬양하는 모든 내용은 그경건한 교인에게는 너무나도 지나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오타를 지적한 후에도, 그는 거의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 찬가 안에 “자연”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긴 합니다. 그는 신학적인 입장을 지켜 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 순간 우리가 우상숭배에 빠져 들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 프란시스가 새들에게 설교한 것을 그 분이 어떻게 이해했을지 궁금해 집니다.)

성 프란시스의 시와 시편 148편의 언어와 감성과 이미지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그렇다고 성경이 창조주 대신 어머니 지구나 자매 달을 숭배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깊이 들여다 보면, 시편 148편의 표현이 기이한 정도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놀랍게 느껴질 수는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시편 148편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또는 그다지 진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가 태양과 달과 바람과 우박과 번개 등이 주님을 찬양하라고 촉구하는 것을 우리는 은유라고 가정합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해가 실제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습니다. 가축이나 바다 생물이나 날아다니는 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그것은 일종의 상상력 넘치는 표현이고 시적 자유일 뿐입니다. 이미지나 은유나 상징이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문제는 시편이 진행되면서 결국 이 같은 찬양 명령이 왕들과 통치자들과 남자들과 여자들과 아이들에게 이르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다 갑자기 우리는 ‘은유’ 스위치를 끄고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 스위치를 켭니다. 마침내 명령을 받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이 시편에 언급된 모든 것들과 모든 이들 중 오직 사람만이이 명령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제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마치 사람만 주님을 실제로찬양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이 시편의 전반부는 순전히 은유적인 과장이며, 후반부에서 비로소문자적인 내용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본문 자체가 언어를 일관되게 구분하지 않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찬양 명령이 사람을 대상으로 할때와 바다 깊은 곳과 과일 나무와 산을 대상으로 할 때 다를 것이라는 그 어떤 언어적 신호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의 조각이고, 모든 것이 매끄러운 시적인 옷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달이 실제로 귀를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그 말에 응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시편에서 깨닫고 선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고 하나님의 귀에 들리는 대로) 이 모든 경이로운 것들과 찬란한 것들과 피조물들이 진정으로창조에 대한 찬양의 합창에 기여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합창단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시편 148편과 욥기 38장-41장을 비롯한 다른 시편들의 이미지만 아니라, 선지서에 나오는 묘사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과 심지어 신약의 서신에 사용된 언어 등 성경 여러 부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런 존재들이 창조된 목적대로 행동할 때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십니다. 달이 회전하며지구에 빛을 반사할 때 하나님은 만족과 영광과 축복을 느끼십니다. 귀뚜라미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할 때, 눈보라의 매서운 아름다움이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을 때, 꾀꼬리들이 노래하고, 흰머리독수리가 하늘로 솟구치고, 산들이 창조된 위엄으로 우뚝 설 때,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시고, 기뻐하십니다.

사실, 저는 과거에 성경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찬양의 생태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대해 글을 쓴 적이있습니다. 피조물과 사물들이 본래의 목적을 성취할 때, 하나님은 기쁨을 누리십니다. 이것이 제가 “기쁨의 신학”이라고 부르는 것이며, 창세기 1장에서부터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안에 넘치는 생동감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몇 종류의 물고기만 아니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색깔과 모양을 가진 온갖 종류의 물고기들을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몇 마리의 새만 아니라, 휘파람새와 두루미와 갈매기와 바다제비 떼로 하늘을 물들이셨습니다. Walter Brueggemann 지적한 것처럼,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물을 보시며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읽고, 또 읽고, 또 읽을 때, 그것은 미학적인 판단일 뿐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넘쳐 흐르고 있는 심오한 기쁨에 대한 감탄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양한 종들의 생물과 산맥들과 깊은 바닷속을 풍성하게 하시며 “야호!”라고 외치시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우리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것처럼 히브리 시편은 무질서한 시들의 모음이 아닙니다. 이 시편들은 더 큰 신학을 구축하기 위해 신중하게 선정되고 편집된 후 정리되었습니다. 시편 1편은 이 세상의 냉혹한 풍경에 대한 묘사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의인과 그렇지 않은 악인이 있으며, 시냇가에 잘 심긴 나무와 같은 의인과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이리 저리 떠도는 뿌리 없는 악인이 있습니다.

시편이 진행될수록 의인과 모든 피조물의 핵심적인 소명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징후들이 점점 더 드러납니다. 찬양에 대한 이러한 부르심은 점점 더 강렬해지며, 시편의 마지막 여섯 편에서절정에 이릅니다. 히브리어 명령인 ‘할렐루야’가 점점 더 많은 사람과 점점 더 많은 피조물과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온 우주에 울려 퍼집니다.

찬양은 우리 모두의 공동의 소명입니다. 인간의 공동 소명일 뿐만 아니라, 이 우주를 함께 나누고 있는 모든 존재와 생명체와 공유된 소명입니다. 시편 148편이 만물과 피조물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촉구하는 것은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은유가 아니라, 창조된 현실의 가장 깊은 핵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넘치고 충만하신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나왔으며, 창조주 하나님을 위해 지어졌고, 그 부르심을성취하는 가운데 우리가 우리의 가장 진정한 정체성을 찾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화 아이디어

성경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지만, 욥기의 결말만큼 놀라운 경우도 드물 것입니다. 심오한 신학적, 영적, 철학적인 논쟁들과 선한 사람에게 왜 나쁜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신정론의 난제들, 그리고 하나님의 길과 의인의 길과 삶의 공정성과 불공정성과 관련된 난해한 질문들로 가득 찬 37장이 거의 지나간 후, 갑자기 (그리고 너무 이르지 않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마지막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은 대부분의 합리적인 사람이 예상했던 것과는 정반대 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신학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욥과 그의 친구들을 사로잡았던 질문들은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은 욥과 우리 모두를 우주로 데리고 가십니다. 우리가 동물원에 가는 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자신이하실 수 있는 많은 것들에도 불구하고, 산양들이 뛰노는 모습과 야생 당나귀들이 춤추는 모습과 독수리들이 하늘을 나는 모습과 하마들이 하마답게 지내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각 장마다 눈의 창고와 밤하늘의 장관과 새끼를 낳는 사슴에 대해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욥기 나머지 부분에 나오는 포괄적이고 (고통스러운) 고민들과 이런 것들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 것입니까? 부분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욥과 그의 친구들의 질문을 새롭게 풀어내시는 창조라는 심오한 신비와 관련이있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찬란한 피조물들과 그분이 빚어내신 온갖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마음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사랑하시고, 그 모든 것들과 피조물들을 기뻐하십니다. 그분은 그 모든 것에서 기쁨을 느끼실 뿐 아니라, 그 모든 것들로부터 찬양을 받으십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시편 148편의 핵심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