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21 주석

베테랑 설교자라면 이 본문을 가지고 여러 번 설교를 해봤을 것입니다. 그러나 올해 우리는 이 본문을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하나 더 공급받았습니다. 최근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 더 많은 강풍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캐리비안 연안의 태풍들, 미 남부 전역의 회오리 바람, 그리고 제 고향인 미시간주 서부에서는 나무 전체와 일부 주택을 무너뜨린 폭탄 사이클론이 발생했습니다. 지금이라도 갑자기 거센 바람 소리를 들으면 지하실로 달려가서 무릎 꿇고 그 파괴력으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교회들을 향하여 모두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폭풍을 보내 달라고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우리가 온전한 정신을 잃은 것은 아닌지 의아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물론 우리는 오순절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지요. 성령께서 교회와 세상에 오심을 “하늘로부터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로 표현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현상의 원인은 고대 성서 언어에 있습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에서 “영”이라는 단어는 바람 또는 호흡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종종 삼위일체의 세 번째 위격인 성령님을 하나님의 생령 또는 바람이라고 말합니다. 오순절 이야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바람이 교회와 도시에 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봅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폭풍 이야기인 오순절 이야기를 봅시다. “바람이 불어 교회가 불어난 날” 이야기 입니다. (제가 보기엔 설교의 제목으로 정해도 좋을 말입니다.)

먼저 두 가지, 즉 바람 이전의 교회 상태와 바람 이후의 교회 상태에 주목하십시오. 폭풍이 오기 전에 사도행전 2:1은 “그들이다 함께 한 곳에 모였다”고 말합니다. 120명 모두가 한 자리에 함께 모였습니다. 좋은 장면입니다. 앞 장의 13절은 그들이 다락방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었던 바로 그 방에 모여 아마도 예수님에 대한 기억을 되풀이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 앞 장은 배반자 유다를 대신할 12번째 사도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그들은 신중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일을 했습니다. 그 장 앞부분 14절에서 우리는 그들이 “다 합심하여 기도에 힘쓰더라”는 내용을 읽습니다. 열흘 동안 그렇게 했습니다. 의심 할 여지없이 바람이 불던 날도 그들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즉, 바람이 불어온 날 전까지 그들은 단정하고 질서 있게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면서 교회의 일을 수행해 왔습니다. 폭풍 전 사도행전 2장의 시작 부분에 있는 교회는 교회의 적당한 모습으로 함께 모이는 것을 좋아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신자들의 단정하게 잘 운영되며 경건하게 기도하는 작은 무리였습니다. 우리 중 누가 그런 교회를 섬기고 싶지 않습니까?

그때 바람이 불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끝의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그들은 여전히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사도들의 가르침과 서로에 대한 기도와 친교에 전념했습니다. 그런데 이전과 같은 무리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우선, 이제 3000명이 더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깔끔하고 조용하지 않았습니다. 전반적으로 경외감과 흥분이 그들에게서 그리고 그들 주변에서 솟아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다락방에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다른 백성들과 그들의 적들이 있던 성전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함께 떡을 떼며 서로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여러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희생적인 나눔과 베품 또한 그 일부였습니다. 자기 소유를 팔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찬양했고 불신자들 조차도 칭찬하였습니다. 그것은 거룩하고 행복하며 왁자지껄 떠들썩한 파티와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에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셨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 났습니까? 우리는 답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바람이 불었고 그 바람은 세상의 창조와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아마도) 가장 큰 두 가지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불의 혀와 방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새로 얻은 외국어 능력으로 무엇을 했고 베드로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오순절의 가장 큰 두 가지 기적은 교회가 세상에 나가서 예수님을 증거하기 시작한 것과 세상이 회개와 믿음으로 응답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바람이 교회의 입과 세상의 마음을 열었던 것입니다.

오순절 이전에 교회는 간절했지만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기꺼이 예수님의 사명을 수행하고자 했습니다. “주님, 이스라엘나라를 회복 시키시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왕국이 임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이에 주께서는 “약속을 기다려라. 내 증인이 되려면 능력이 필요하다.” 그들은 열망했지만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들이 지식이 부족해 더 배우고 더 많은 수업을 들어야 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다니며 그분의 가르침을 들었고 그분을 그들의 구세주이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으로 개인적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신 세상과 그 지식을 나눌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간절함과 지식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입술은 세상에서 봉인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불어넣으셨고, 그들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여 모든 사람을 경외와 찬송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렇습니다.

오순절의 또 다른 기적은 아마도 더 큰 기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날 베드로가 군중에게 말했을 때 그는 그리스도께 마음이 완전히 닫힌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23절에서 그는 그들을 그리스도 살해자들(Christ killers)로 규정합니다. (‘그리스도 살해자’라는 표현의 사용과 관련한 주의사항은 CEP 웹사이트의 2020년 4월 19일자 사도행전 2:14a, 22-32 설교주석에 써 있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들의 손을 빌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도다.” 이들은 마음이 강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의 기적을 목격했지만 그를 향하여 돌 같은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람 불었던 그 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습니다. 37절은 “저희가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이르되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찔려”라는 말은 바늘이나 칼과 같은 날카로운 도구로 찌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정확히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바람이 베드로의 입을 열고 그가 예수님에 대한 설교를 하도록 했을 때, 성령은 칼집에서 성령의 검을 빼내어 이 그리스도를 죽였던 자들의 마음 깊숙이 박아 넣으셨습니다. 그러자 완고한 불신으로 닫혀 있던 마음이 갑자기 열리고 부드러워졌으며, 그리스도를 죽였던 자들이 그리스도를 찾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그리고 그 날 3000명이 세례를 받은 신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바람이 그들의 마음에 불어 닫혔던 문을 날려버렸기 때문입니다. 기적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순절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와 세상, 여러분과 나, 우리가 사랑하는 불신자들과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불신자들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바람에 문이 날아가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중 많은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우리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알고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큰 의무감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능력, 오직 하나님의 성령만이 주실 수 있는 능력, 세상에 예수의 이름을 말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바람만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사랑하는 참된 제자들로 이루어진 단정하고 깔끔하고 헌신적인 무리를 하나님처럼 세상을 사랑하는 역동적이고 활기차고 복음을 나누는 교회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마음의 변화입니다. 정치인들과 교육자들, 비즈니스 리더들과 사회 평론가들, 예술가들과 사회활동가들은 인종 관계, 남녀 평등, 기후 변화, 국제적 긴장, 정치적 경쟁, 빈곤과 전쟁, 질병, 수십억 개인의 비극에 대해 고민합니다. 이 모든 고통과 악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답을 찾아 헤매고 있을 때, 마태복음 15장 19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계속해서 떠오릅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살인과 간음과 음행과 도둑질과 같은 것” 입니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 모든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은 마음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바람이 우리 세상에 불어서 마음을 꿰뚫고 그리스도께 마음을 열고 사람들의 삶을 안팎으로 돌이키게 해야 합니다.

저라면 “바람이 불어 교회가 불어난 날” 오순절 설교를 이렇게 마무리 할 것입니다. 당신이 교회나 세상에 대한 부담이 있다면, 세상에서 교회의 무력한 증거나 세상 사람들 마음의 완악함이 괴롭게 느껴진다면,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당신 자신의 증인된 삶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님께 절대적으로 닫혀 있다면 폭풍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저는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에게 바람이 임의로 분다고 말씀하신 것을 압니다. 물론 그것은 사실입니다. 성령에게 명령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가 이 일로 열흘간 기도하던 중에 갑자기 바람이 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약속도 사실입니다. 누가복음 11장 13절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세요, 나의 친구들이여. 폭풍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문제와 질문으로 가득 찬 세상에 직면한 교회와 세상, 여러분과 저를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옛 민요 가사에도 있듯이, “친구여, 해답은 부는 바람 안에 있다네, 해답은 부는 바람 안에 있다네.”

예화 아이디어

오늘날의 교회는 종종 초대 교회의 거울상처럼 보입니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한 몸으로 모이도록 많은 언어로 복음을 전하는 대신에 교회의 여러 부분들이 각각 폐쇄된 작은 그룹끼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서로 만이 아는 비밀스러운 특정 관심과 정치적인 성향이 강한 언어로 말이죠. 서구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무종교인 (“None”) 이라 말하는 사람들의 수가 현재 미국 인구의 거의 4분의 1에 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헌신과 희생으로 서로 사랑할 때 일어나는 기적에 대해 경외와 놀라움이 없습니다. 대신 교회의 위선과 분열에 대한 질책과 조롱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성령의 폭탄 사이클론, 회오리 바람, 태풍이 필요할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입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