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0:1-11
다윗(혹은 이 시편을 기록한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은 이 시편을 거꾸로 쓴 걸까요? 시편 40편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다만, 후반부 대부분은 주일 독서표에서는 생략되어 있습니다). 처음 약 10절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과 감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늘 그렇듯이, 우리가 정확히 무엇이 이 시인을 그렇게 감격하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분명 큰 일이었을 것입니다….
시편 148:1~14
몇 년 전, 우리가 한 예배에서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가 쓴 “태양의 찬가”를 교독문으로 사용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주보에 약간의 오타가 있어서 마치 우리가 ‘어머니 지구’(Mother Earth)를 숭배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그래서 우리 교회의 한 보수적인 교인이 저와 예배위원회에 보낸 편지를 보냈습니다. 우리가 다소 ‘뉴 에이지’(New Age) 사상에 빠져들고 있거나, 지구가 살아있는 신성한 존재라는 ‘가이아 원리’(Gaia Principle)를 지지하는…
시편 80편 1–7, 17–19
코멘트, 관찰, 그리고 질문 올해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시점에, 시편 80편은 우리가 보통 성탄절과 연관 짓는 따뜻한 장면들과는 전혀 다른, 매우 어두운 풍경 속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시편 80편을 읽다 보면—비록 Lectionary가 이 시편의 한가운데 있는 더 암울한 구절들을 건너뛰려 해도—이 시편이 파괴와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도임을 놓칠 수 없습니다. 이 시편은 예루살렘과 성전이 바빌로니아인들에…
시편 122
시편 122편은 시편120편부터 134편까지 이어지는 15편의 시편 중 하나입니다. 각 시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란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이 제목의 의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부르던 순례의 노래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열 다섯 편의 시편들에 “예루살렘”, “시온” 그리고 “야웨의 집” 이란 용어들이 매우 높은 빈도로, 그리고 밀도 있게 등장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시편122편에 지리적 구체성이…
시편 84편 1-7
캘빈 신학교 채플의 강단 위, 설교대 뒤쪽에는 중앙에 십자가가 있는 큰 유리창이 있습니다. 몇 해 전 봄학기 집중강좌 설교 수업을 채플에서 진행할 때, 우리는 모두 그 창 가장 위쪽, 십자가 꼭대기 부근 창틀에 커다란 뿔올빼미가 둥지를 튼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어미 올빼미는 몇 마리 올빼미 새끼를 키우고 있었지요. 학생들이 수업 중 설교를 할 때면,…
시편 1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편집자의 우발적인 사건도 아니었습니다. 누군가가 동전을 던져서 시편 중에 어떤 시를 시편1편으로 정할지 결정한 것도 아닙니다. 시편 저자가 신중하게 편집한 것이며 의도적으로 구성된 시 모음집입니다.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5권의 책으로 나뉜 시편의 각 책이 끝날 때마다 마지막 구절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하라, 아멘.”이라는…
시편 49:1-12
때때로 우리는 시편이라 부르는 시들과 잠언서 같은 지혜문학을 구분 짓는 선이 매우 미세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시편 49편은 그 경계가 현저히 흐려지는 전형적인 예입니다. 사실, 시편 49편은 여러 잠언 구절들과 충분히 유사해서 그 자체로 하나의 지혜문학으로 분류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더 나아가, 시편 49편은 잠언의 대표적인 주제 중 하나를 다루고 있습니다. 즉, 재물의 속임수와 공허함, 그리고 재물을…
시편 25:1-10
앨런 블룸은 몇 년전에 쓴 그의 책인 The Closing of the American Mind에서 미국 대학들에서 진정한 교육이 쇠퇴하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블룸은 최신 유행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환영하면서 전통적인 문학 노선과 단절하는 많은 교수들의 방식을 성토했습니다. 그는 비판적 사고와 명철한 분별력이 포스트모던 순수성의 상징인 ‘열림’에 의해 대체된 현실에 대해 탄식했습니다. 블룸은 슬프게도 교육받은 사람의 기준이 날카롭게…
시편 66:1-9
조금 건방진 태도. 적당한 뻔뻔함. 약간은 앞서 나간 느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온 세상이 찬양하라고 명령하는 시편 기자들의 태도는 어찌 보면 대단히 당당하고 대담합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시편 속의 수많은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구절들은 모두 명령형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이것들은 직접적인 명령이자 지시입니다. 그리고 이 고대 시인들은 이 명령을 받는 사람들이 이집트인인지, 바벨론인인지, 페니키아인인지, 혹은 히타잇 사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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