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4:1, 7-14 주석
잰 리처드슨(Jan Richardson)은 이 본문을 “식탁의 끝없는 지혜 (the endless wisdom of the table)” 를 보여주는 여러 본문 중 하나로 설명합니다. 물론 이 지혜는 예수님께서 공동체를 새롭게 하기 위해 그 공간을 변혁시키시는 방식에서 비롯됩니다. 지난주 본문을 막 끝낸 직후, 오늘의 교회력 본문은 안식일에 있었던 치유 사건(2-6절)을 건너뛰고 안식일 식사 장면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1절을 도입으로 포함하면…
누가복음 13:10-17 주석
“아이디어를 얻으러 가지 마세요.” 그것은 안식일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꽃을 선사한 지도자의 메시지입니다. 그것은 한 여인의 끔찍한 고통을 기적적으로 치유하신 예수님에 대한 지도자의 반응입니다. 여기서도, 오늘도, 여러분 중 누구에게도 아닙니다. 교회에서 누군가가 건강하고 온전하게 회복된 모습을 보고는 바로 다른 누구도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하도록 하고 싶다고 상상해 보세요. 저는 눈물이 나네요. 이야기가 어떻게 전달되는지…
누가복음 12:49-56 주석
이 본문이 이번 여름에 많은 사람들에게 타격을 줄 것 같아 보입니다. 복음주의든 주류 교파든, 규모에 상관 없이, 총회의 결정으로 많은 교인들이 지금까지 알고 지내 왔던 유일한 신앙의 터전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불세례의 시작인가요? 예수님의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라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온유한 (즉, 연약한) 종으로서가 아니라, 전사로서 “옳은 것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누가복음 12:32-40 주석
주인과 깨어 있는 종들의 비유와 재산을 팔아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는 명령(즉, 하나님의 일에 부요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을 연결시키면, 32절은 교리의 중요한 핵심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우리에게 그분의 나라를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번 공과 본문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전체적인 큰 그림을 설정하고 나서, 예수님이 처음에 언급하신 두려움에 대해 좀 더 집중해 봅시다….
시편 49:1-12 주석
때때로 우리는 시편이라 부르는 시들과 잠언서 같은 지혜문학을 구분 짓는 선이 매우 미세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시편 49편은 그 경계가 현저히 흐려지는 전형적인 예입니다. 사실, 시편 49편은 여러 잠언 구절들과 충분히 유사해서 그 자체로 하나의 지혜문학으로 분류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더 나아가, 시편 49편은 잠언의 대표적인 주제 중 하나를 다루고 있습니다. 즉, 재물의 속임수와 공허함, 그리고 재물을…
호세아 1:2-10 주석
저희는 신학교 학생들에게 특정한 경험 법칙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사역의 동료로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음속 깊이 이 진리를 직관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설교자들은 배우자와 자녀를 설교의 예화로 삼거나, 좋든 나쁘든 행동의 본보기로 삼거나, 그저 일반적으로 설교와 가르침과 사역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아무리 해도 위험하다는 것을 압니다. 호세아에게 말해 보세요! 고대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호기심 많은…
누가복음 10:38-42 주석
저는 어린 시절의 거의 대부분을 형제자매 중 하나와 침실을 공유했습니다. 또 성인이 되어서는 룸메이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르다가 마리아에게 느꼈던 좌절감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집안 일을 분담해야 하는데 자신의 몫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거나, 그다지 도움이 안 되거나, 다른 일에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편리하게, 주의를 빼앗기는 사람이 하나씩 있는 듯 했습니다. 따라서 본문의 이야기에 대한…
시편 25:1-10 주석
앨런 블룸은 몇 년전에 쓴 그의 책인 The Closing of the American Mind에서 미국 대학들에서 진정한 교육이 쇠퇴하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블룸은 최신 유행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환영하면서 전통적인 문학 노선과 단절하는 많은 교수들의 방식을 성토했습니다. 그는 비판적 사고와 명철한 분별력이 포스트모던 순수성의 상징인 ‘열림’에 의해 대체된 현실에 대해 탄식했습니다. 블룸은 슬프게도 교육받은 사람의 기준이 날카롭게…
시편 66:1-9 주석
조금 건방진 태도. 적당한 뻔뻔함. 약간은 앞서 나간 느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온 세상이 찬양하라고 명령하는 시편 기자들의 태도는 어찌 보면 대단히 당당하고 대담합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시편 속의 수많은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구절들은 모두 명령형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이것들은 직접적인 명령이자 지시입니다. 그리고 이 고대 시인들은 이 명령을 받는 사람들이 이집트인인지, 바벨론인인지, 페니키아인인지, 혹은 히타잇 사람인지…
설교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