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과 깨어 있는 종들의 비유와 재산을 팔아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는 명령(즉, 하나님의 일에 부요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을 연결시키면, 32절은 교리의 중요한 핵심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우리에게 그분의 나라를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번 공과 본문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전체적인 큰 그림을 설정하고 나서, 예수님이 처음에 언급하신 두려움에 대해 좀 더 집중해 봅시다. 예수님은 우리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바라건대) 한밤중에 찾아온 친구 비유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의 선하신 하나님, 선하신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좋은 것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결핍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를 위해 더 많이 쌓아두거나 간직할 필요도 없습니다(음… 더 큰 창고를 짓는 것처럼 말이죠). 오히려 지금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서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형태와 특성에 맞는 것입니다.
누가 디모데 존슨은 그의 주석에서 우리가 “모든 실재의 근원이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삶 자체가 선물임을 확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두려움에서의 자유가 “소유에 대한 관대한 태도”로 상징됩니다.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을 때, 움켜진 손을 펼치고 관대하게 나눌 수 있습니다.
깨어 있는 종과 관대한 주인 이야기는 이 자유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거기에는 결핍에 대한 공포가 없습니다. 누가복음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저는 학자인 케네스 베일리가 제공한 문화적-역사적, 문맥적 배경 자료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장면은 혼인잔치이지만, 잔치가 열리는 곳과는 멀리 떨어진 공간에서 이루어집니다. 36절에서 주인이 “돌아오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동사는 다소 모호하며, 베일리는 혼인잔치가 아마도 주인의 큰 연회장에서 열리고 있으며, 그 종들은 신혼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이들은 혼인잔치에서 시중드는 종들이 아니기에 베일리는 이들을 주인집에서 가장 낮은 계급의 하인들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들이 비록 가장 낮은 계급에 속해 있지만, 그들은 자신의 의무를 수행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그들은 옷을 갖춰입고, 밤새도록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38절은 주인은 한밤중에 올 수도 있고 새벽에 올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등불을 계속해서 밝히는 일은 기름을 가까이 두고 심지를 다듬는 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즉, 등불을 계속 밝혀야 하기에 잠들 수가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종들이 이렇게 성실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잠자다가 발각될 경우 받게 될 불이익을 두려워한 것일까요? 아니면 잔치에서 시중들 기회를 얻어 하인 계층 내에서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는 것일까요?
앞서 본 구절인 두려워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려 보면, 우리는 종들이 어떤 주인을 섬기고 있는지를 통해 그들의 동기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주인은 잔치가 아직 진행 중일때, 그 곳을 떠나 자신의 가장 낮은 종들에게 마치 그들의 종인 것처럼 섬기는 시간을 가집니다. 주인은 실제로 잔치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잔치를 가져다줍니다.
그들은 소외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선한 주인이 자신의 손으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종의 모습을 띠고, 종이 하는 자세로, 종들에게 편안히 앉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 또한 혼인 잔치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은 주인의 침실에서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주인이 이미 이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주인이 잔치를 떠날 때, 그는 잔치의 일부를 스스로 담당했습니다. 부엌에 가서 음식을 준비한 것이 아니라 종들에게 와서 그들을 섬긴 것입니다. 종들을 섬기는 주인의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이 다섯 번이나 반복됩니다.
주인이 혼인잔치에 우리를 포함시키신다는 약속은 놀라운 경험을 놓칠 두려움이 없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기대감을 갖고 기다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주인이 종인 우리를 위해 잔치를 베푸신다는 약속은 하나님이 선한 주인이시기 때문에 감사와 기쁨으로 그를 섬기도록 합니다. 주인이 우리에게 오시겠다는 약속은 우리가 그분을 간절히 맞이하도록 소망을 품게 합니다.
하지만 기다림은 길어질 수 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도 있습니다. 미리 경각심을 준다면, 밤새도록 주인을 기다리는 이야기의 해설과 도둑이 언제 올 지 모른다는 경고는 우리의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가 원하는 만큼 즉각적으로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깨어있는 제자의 삶을 산다면 우리는 여전히 복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의 눈과 마음이 우리가 기다리는 분으로부터 돌아선다면 두려움, 이기심, 그리고 피폐함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는 실제로 가능한 일입니다. “인자가 생각하지 않은 때에 오리라” 하셨고, 우리는 하나님이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는지를 의심하기 쉬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도움이 되는 것은 예수님이 이 가르침을 이 이야기와 함께 연결하셨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단순히 주인의 특별한 상황 또는 사건이 아니라 선한 주인의 본래의 모습이란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단지 다가올 좋은 것으로 우리를 애타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혼인잔치에 이미 우리를 초대하심으로써 우리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를 선물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 그분의 제자로서 우리가 준비된다는 것은 현재의 자원을 미래의 가치에 맞게 관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보물이 있는 곳에는 우리의 마음도 있습니다.”
본문 요점
예수님은 섬길 준비를 하는 종과 섬기려고 자신을 단장하는 주인을 묘사할 때 동일한 동사를 사용하십니다. 그 단어는 “허리에 띠를 띠고”란 구절과 연결되며 당시의 일반적 복장이었던 길고 헐거운 옷을 고정시키기 위해 허리 띠로 묶어 자유롭게 다리가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화 아이디어
2010년 이후로 방영되고 있는 CBS 방송의 “위장근무중인 사장님”이란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높은 직급의 CEO가 변장을 하고 가장 낮은 직급의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사장은 근무 환경, 직원들, 조직 문화, 그리고 직원들이 경영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직접 경험하게 됩니다. 종종 이야기는 한 명 이상의 직원이 CEO로부터 추가적인 지원이나 인정을 받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위장근무중인 사장은 예수님이 묘사하신 주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님은 어떤 교훈을 배울 필요도 없으며 처음으로 자신의 일꾼들을 만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종들과 친밀한 관계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주인은 이미 그의 종들을 생각하고 있으며 복을 베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서 보여주신 주인은 얼마 동안 변장하고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간 본성을 취하시고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활동하시는 분이십니다.
누가복음 12:32-40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