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 후서 3장 14-4장 5 주석

글쎄요, 오늘의 서신 lectionary에서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사역에 대한 승리의 관점에 대해 아무도 바울을 이 지상에서 비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에게 보낸 이 두 편지는 동료뿐만 아니라 정말 힘든 사역 환경에 있는 제자와 멘티를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디모데가 에베소에서 직면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그가 가서 섬기고 사역하는 곳마다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이쿠.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2천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에야 사실임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바울은 여기서 인간의 본성을 아주 잘 지적합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듣고 싶은 것과 맞지 않기 때문에 건전한 교리나 가르침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기꺼이 진리에 의해 형성되기보다는 그들이 듣고 싶은 진리를 찾고 듣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줄 교사들에게 매달릴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계속 듣고 싶은 것을 찾고 듣고 자신의 견해를 지지하는 많은 가르침을 쌓으며 그런 교사들을 따를 것입니다.

‘나의 진실’의 시대는 지난 몇 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인터넷이 아이디어의 세계를 모든 사람의 굴(음식)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듣고 싶은 설교자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으며, 듣고 싶은 것과 일치하는 세계관을 제시하는 podcasts, 또한 Twitter와 Instagram과 Facebook(그리고 내가 제외하고 있는 다른 플랫폼이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을 누가 따라갈 수 있습니까!?)을 통해 편견, 정당화 또는 욕망을 즉시 확인할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사람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누가 그 성경에서 목사가 주일에 말하는 것을 신경 쓰겠습니까?

바울은 개인적으로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승인하시는 방식으로 사역을 하는 것이 통하지 않거나 성공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이 소명임을 이해하고 공유합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는 것이 바울이 디모데에게 두 편지에서 묘사하고 명령한 것이며 성경의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뿌리는 그의 어머니와 할머니, 나중에 바울 자신이 디모데에게 전해 졌음을 가르칩니다. 바울은 “알다”와 “갖추다”라는 동사에 완전한 시제를 사용하며 설명하므로 디모데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모든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깊이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의 삶과 사역이 그곳에서 흘려 나왔습니다. 그의 모든 삶과 삶의 목적이 그곳에서 흘러나온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바울의 사역과 삶이 끝났을 때도(다음 주에 더 자세히 설명), 바울이 원하는 것은 디모데가 사역이 어렵고 잘 되지 않는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로 우리의 성공을 측정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그것을 무엇으로 측정합니까? 바울은 그 측정이 우리 앞에 있는 일에 충성하는 데 있다고 주장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것을 우리 앞에 당한 경주, 곧 예수께서 우리 경주의 창시자요 온전케 하시는 자요 속도를 정하는 자로서 두신 길을 달리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디모데와 바울은 목사이지만 그 생각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합니다. 우리는 모든 변덕과 욕망에 따라 가나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두신 것을 고수합니까? 우리는 기분을 좋게 해 줄 믿음의 지도자를 찾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영이 일관되고 끊임없이

하시는 변화의 초대를 우리에게 제시해 줄 사람을 찾고 있습니까? 우리는 몇마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풍부한 진리의 말씀 속으로 스스로 깊이 빠져들고 있습니까? 우리는 믿음에 뿌리를 둘 것입니까, 아니면 신화와 함께 방황할 것입니까?

이러한 시대에 부름은 확고함을 취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5절의 설명에 맞습니다: 근신(Gordon Fee는 번역을 “머리를 지키라”고 제안함), 고통을 견디고, 일을 하고, 사역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떠나는 중이지만 디모데에게 그의 믿음이 그의 영적인 조상들을 통해 그의 삶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상기시켜줌으로써 디모데를 잘 세웁니다. 그러나 더욱이 디모데는 어렸을 때부터 알고 연구한 하나님의 영감받은 성경을 통해 세워 졌음을 말합니다. 당시에는 이것이 지금은 구약성경이라고 하였지만 그러나 지금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만 이야기하던 것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옮겨갔습니다. 바울은 디모데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말합니다. 그는 성경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자신의 부름에 능숙해질 것”이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모든 말씀에는 우리가 복음과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는데 필요한 말과 행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 자신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주권적인 하나님을 계시할 때, 우리가 포기하고 싶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격려를 줍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은 무엇이 참되고 고귀할 뿐만 아니라 무엇이 옳은 일인지에 대한 설명을 바르게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거룩한 말씀에 영감을 주신 바로 그 성령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뿐임을 알게 하십니다.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을 할 교사를 쌓아두거나 축적하는 것과, 그 교사들의 말을 계속 듣고 우리가 들은 것에 대해 결코 행동하지 않으려는 유혹에 대조적으로 바울은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의 메시지로 충고합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부활하신 왕이신 예수님의 단순한 실재에 충분한 신비와 복잡성이 있음을 상기했었습니다. 이번 주에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삶이라는 경기장에 고착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것이 부르심임을 알아야 함을 말합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사역이나 그리스도인의 증인으로 사는 것이 지금 여기에서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신성한 성경 말씀은 예수님이 승리하셨다는 것을 확증합니다. 우리는 이미 그러나 아직 실재가 아닌 그리스도의 최종의 통치와 주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단순히 믿음의 뿌리에 계속 연결되어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 그분의 부르심에 충실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예화 아이디어

지난 몇 년 동안 “당신의 목사님이 이번 주일에 ____설교하지 않는다면…”이란 기독교 소셜 미디어에서 추세가 나타났습니다. 당신은 요즘 핫한 이슈로 ___ 공백을 채울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의 목사님이 이번 주일에 이민이나 가족 이혼에 대해 설교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목사님이 이번 주일에 총기 폭력에 대해 설교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목사님이 이번 일요일에 인종차별에 대해 설교하지 않는다면…

그 주에 뉴스에 나온 것이 무엇이든, 당신의 목사님은 주일에 그것에 대해 설교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체 진술은 “당신의 목사님이 이번 주일에 ____에 대해 설교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당신의 교회를 떠나야 합니다/ 일어나서 나가거나/ 새 교회를 구해야 합니다.”이기 때문입니다.

듣기 좋은 말입니다. 성경과 설교는 바로 여기 지금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실용적이고 적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사람들의 귀는 세상의 질병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가렵습니다.

그러나 순서나 출발점이 거꾸로 된 것 같습니다. Revised Common Lectionary의 요점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정경을 통해 신앙 공동체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당장의 뜨거운 화두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세상을 괴롭히는 어려운 문제에 대한 진실을 이미 알 수 있도록 건전한 가르침과 격려와 책망과 시정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매주 단련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에게 속한 자마다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문제에 있어서 측정은 설교자가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설교자가 말하는 것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여 듣는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지를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조명한대로 우리 인간은 우리가 듣고 싶은 것을 말해줄 스승을 찾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하는 일에 대해 다르게 할수 있는 말을 듣는 것 보다 우리는 지금 듣기 좋은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을 곤경에서 벗어나게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핑계를 찾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리고 우리 설교자들이 여기서 우리 자신의 “아웃 out”이나 변명을 찾고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디모데와 가르치는 자들에 대한 바울의 말을 상기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산자와 죽은자의 심판자이심을 알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잘 선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