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나다”(It is I)로 번역될 수 있는 예수님의 “I am” 선언입니다. 문자 그대로 보면, 비르예르 예르하르드손(Birger Gerhardsson)은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적에 관한 자신의 주석에서 egō eimi라는 두 단어가 그리스어 단어 수를 세어보았을 때 정확히 이 이야기의 한가운데 위치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I am”이시기에, 제자들은 거센 바람과 파도에 맞서 싸우면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용기를 내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폭풍이 그칠 것이라는 약속이 아니라, 가혹한 상황 속에서도 특별한 태도로 임하라는 요구입니다. 마태는 앞서 이 동사(tharseō)를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이 단어는 “위험이나 역경에 직면했을 때 마음을 굳게 먹고 단호해지는 것”(BDAG)을 뜻합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바로 나다”(It is I)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군분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와 함께 하고 있으니, 어려움에 단호하게 맞서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I am”이라는 이 말씀 다음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또 다른 명령을 내리십니다. 저는 예수님이 여기서 과연 어떤 의미로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처한 상황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이는 마태복음 10장에서 제자들이 긍휼의 사역으로 파송 되었을 때 그들을 박해할 자들에 관해 하셨던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육체적인 해를 가할 수 있는 자들을 두려워하기보다, 그들의 영혼을 주관하시는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그렇게 보는 것이 맞다면, 제자들이 폭풍 속에서 목숨을 잃는다 해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I am”이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이 물 위를 걷는 자신을 유령으로 여기는 두려움에 대해서도 답하고 계십니다. 제자들은 누군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새벽 즈음이었고 폭우와 강풍, 거친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으니 예수님이 이미 꽤 가까이 다가와 계셨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즉시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물 위를 걸어오시는 스승을 마주했을 때, 예수님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현상에 관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다행히 예수님은 유령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평범한 인간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나에게 시선을 고정하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렸다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때도 하나님은 자신을 “I am”으로 소개하셨습니다(개역개정 출애굽기 3:14 ‘스스로 있는 자’).
모세는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타서 사라지지 않는 신비한 광경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 장소로 이끌렸습니다. 베드로가 물 위에 있는 서 있는 존재에게 이끌린 이유는, 그 형체가 진정 자신의 스승이신 예수님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그분을 신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데일 브루너(Dale Bruner)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 위로 나가도 안전할 것이라는 약속을 구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오라 명령해 달라”라고 요청했다는 점에 주목하며 매우 통찰력 있는 지적을 합니다.
위대한 “I am”이신 분이 오라고 명령하신다면, 베드로는 어떤 위험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설령 지금까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폭풍을 견뎌낼 수 있게 해 준 배를 떠나 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라도 말입니다. 베드로에게는 예수님을 향한 깊은 신뢰와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깊은 신뢰와 믿음에도 불구하고 폭풍은 여전히 몰아쳤고 상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에 굳게 서 있다고 해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베드로가 물에 빠진 게 십분 이해가 갑니다. 마태복음에서 베드로가 “강한 바람을 알아 차렸다”라고 하는 이 표현은 그 강도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단어를 확대해석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blepō라는 동사는 어떤 것을 구체적으로 인지하는 “보는” 행위입니다. 이것은 산만한 생각 때문에 좌절된 사고 실험(a thought experiment thwarted by a distracting thought)이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궤도를 이탈한”(blown off course)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한번 상상해보세요. 베드로가 정말로 파도 위에 서 있고, 그 파도들은 예측할 수 없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그 바람은 그를 밀고 당기며 소용돌이 치는 자연의 힘입니다. 만약 제가 베드로의 입장이 된다고 상상해 본다면, 그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향해 계속 나아간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며, 잘 포장된 보도 위를 가볍게 산책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두려움에 빠지고 불안에 떱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기를 내라(Take heart)”는 명령은 참으로 적절합니다. 두려움이나 걱정 때문에 상실 된 우리의 마음을, 우리는 끊임없이 다시 붙잡아야만 합니다. 저는 베드로가 물속으로 가라앉던 순간에 그렇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두려움에 사로잡힌 순간, 베드로가 돌아갈 곳은 자신의 뒤편에 있는 배나 다른 제자들이 아니라, 바로 “I am”이신 그분 뿐이었습니다. 폭풍이 몰아 치는 바다 한가운데서 자신과 함께 계신 예수님 말입니다. 저는 베드로가 구원을 간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점이 너무나 좋습니다. 비록 그가 예수님께서 방금 내리신 명령을 지켜내지 못했음에도 말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예수님께서 바람과 파도와 쏟아지는 비 속에서 그와 함께 계셨기에 베드로의 손을 즉시 붙잡아 그를 건져 품에 꼭 안아 주실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셨던 질문을 새로운 방식으로 들어본다면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이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을 심판이나 비난의 말로 받아들이는 대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배움이나 믿음의 성장을 주시기 위해 질문을 던지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전지 전능하시며 무한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믿음이 작은 자들입니다. 우리의 의심을 세밀하게 짚어 보고, 왜 어떤 상황에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고, 또 고난과 역경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 모든 과정을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대화 속에서 헤아려 나간다면, 우리의 믿음은 결국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이렇게 할 때, 우리는 동일한 상황, 혹은 그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도 맞설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믿음이 자라간다면, 두려워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지키는 일은 오히려 수월해 질 것입니다.
본문 요점
성구집 본문의 시간적 흐름(timeline)을 생각해봅시다. 지난 주 본문에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홀로 계시려 하셨지만, 자신을 따라온 수천 명의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은 그들을 보시고 깊은 연민을 느끼셨기 때문입니다. 반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저녁 식사를 제공하는 예수님의 이 지극히 일상적인 기적에 마지못해 동참했을 뿐입니다. 이제 제자들로 하여금 놀랍도록 풍성하게 남은 음식을 거두어들이게 하신 예수님은 그들을 먼저 떠나게 하시고, 자신이 직접 무리를 해산시키는 길을 택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다시 홀로 물러나 기도에 전념하시는데, 과연 이것은 세례 요한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함이었을까요? 아니면, 제자들을 향해 느끼신 답답함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사람들을 향한 그분의 연민이 기도를 통한 중보로 이어졌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 모든 것을 합한 것, 또는 그보다 더한 어떤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갈릴리 호수에 폭풍이 몰아치기 전에도, 이미 그날은 실로 복잡한 일들로 가득 찬 하루였습니다.
예화 아이디어
“내가 ‘이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을 때”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있어서 꽤나 익숙한 방식입니다. 구글에서 검색해 보면, 이러한 정서를 활용한 수많은 밈들(memes)이 나오는데, 그 소재는 개인적인 경험에서부터 사회적 정치적 영역(경제, 기후, 팬데믹 등)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다양합니다. 제자들, 그 중에서도 특히 베드로가 그날 밤의 일을 회상하는 것을 상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는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갈릴리 호수에서 갑작스럽게 몰아치곤 하는 폭풍 한가운데 갇혀서, 거센 파도와 씨름하며 안간힘을 썼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비참하고 두려운 순간이었어요. 그런데 이 밤이 ’이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그때, 물 위를 걸어오는 어떤 형체를 목격하게 된 겁니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 유령이 우리를 끝장내려고 오는 줄로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도대체 누구였는지는, 여러분은 절대 믿지 못하실 겁니다…”
마태복음 14:22-33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