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23-32 주석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하게 하신 다음 날이다. 이제 예수님은 다시 성전에 오셨고, 체제를 뒤흔드는 이 사람을 도전하기 위해 종교 지도자들이 집단으로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 정체를 밝히라고 요구한다. 어떤 권위로 이런 일들을 행하고 가르치느냐, 그리고 누가 그런 권리를 주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곧 이 지도자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진다. 어쩌면 그들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예수님과 맞서지 말아야 했다. 이제 그들은 권위가 맞붙는 장면 속에 갇혀, 어떻게든 군중을 자기편으로 유지하려 애써야 하는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제인 이유는, 세례 요한이 이들에게 상당히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음에도 이 지도자들은 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지도자들은 사안의 중대함을 이미 알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그들은 요한의 권위가 하늘로부터 왔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삶의 개혁과 준비를 촉구하는 그의 메시지를 믿지 않기로 선택했다. 과거의 행동을 보면, 그들은 요한의 권위를 인간적인 것으로 보았다고 답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들의 지지 기반이 되는 군중은 그러한 답변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군중의 반응을 의식해 “우리는 모르겠다”라고 대답한다.

예수님 역시 지도자들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답하지는 않으신다. 그러나 훨씬 더 분명하게 자신의 요점을 드러내신다. 세례 요한의 권위에 관해 던지신 질문은, 자신의 권위가 요한과 동일한 근원에서 왔음을 암시한다. 게다가 예수님과 요한은 자신의 권위를 변호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그 권위를 살아내는 데 바쁜 사람들이다.

그다음 예수님은 짧은 비유를 말씀하신다. 이 비유는 겉보기에는 권위에 관한 논쟁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이 자신의 권위를 증명하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님은 참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권위를 받아들이는 것에 관해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는 여전히 예수님이 답하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예수님은 자신에 관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전 지도자들에 관해 말씀하신다. 그 단서는 반복되는 단어들 속에 있다.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예수님은 같은 단어를 사용하여 “두 아들 중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였느냐?”라고 물으신다.

또 다른 단서는, 지도자들이 요한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로 한 데서 발견된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설명하시면서 지적하신 것처럼, 만일 그들이 요한을 믿었다면 그들은 마음을 바꾸고 회개하여 삶의 방식이 달라졌을 것이다. 세리들과 창녀들의 삶에서 나타난 변화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처음에는 “싫다”라고 했지만 나중에 마음을 바꾸어 아버지의 일을 행한 첫째 아들과 같지 않았다.

이 책망 속에서도 예수님은 그들에게 여전히 그들의 마음과 삶을 바꿀 기회를 주고 계신다. 심판 가운데서도 친절과 회개의 기회를 주고 계신 것이다. 그러나 32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요한이 의의 길로 너희에게 왔으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고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으며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느니라.”  즉, 그들은 요한의 권위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실제로 역사하는 것을 보고도 계속 완고함 속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들이 쥐고 있던 통제력을 내려놓기 싫었기 때문일까? 혹은 게으름, 또는 반역이었을까? 그들은 둘째 아들처럼 겉으로는 바르게 보이고 말도 그럴듯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들은 요한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았고, 예수님께도 동일하게 반응할 것이다.

둘째 아들은 겉으로는 순종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반면 첫째 아들은 처음에는 불순종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회개를 통해 의로운 자로 드러났다.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세리들과 창녀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공공연히 죄를 짓는 삶을 살았지만, 요한의 메시지를 통해 마음을 바꾸고 회개했다. 예수님은 그들의 회개가 오히려 선택받은 자들인 지도자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 역시 믿고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대화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지도자들이 와서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따져 물었을 때, 예수님은 성전에서 군중을 가르치고 계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라고 물으실 때, 그 질문은 단지 지도자들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향한 것이다. 각자가 어떤 권위를 따를 것인지, 그리고 어떤 순종을 보일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라는 초청이다.

성전 지도자들은 세례 요한에 관한 그들의 답변으로 인해 군중의 신뢰를 잃을까 염려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은 그들이 이미 패배했음을 선언하신다. 그들이 패배한 이유는 말 때문이 아니라, 의의 길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참된 권위는 그 열매로 증명된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메시지이다. 진짜 열매를 보라. 선함, 친절, 절제, 인내, 사랑, 기쁨, 평화, 관대함, 온유함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아는 자들이다. 그들은 힘과 권위에 심취한 자들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다스리시는 분, 곧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데 더 관심을 두는 이들이다.

본문 핵심 

이 비유는 성전 지도자들의 위선과 불신앙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세 가지 비유 중 첫 번째이다. 교회력 본문은 앞으로 몇 주 동안 이 비유들을 계속 다루게 되며, 실제로 이후 약 여섯 주 동안 모든 본문이 성전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배경으로 한다. 이를 하나의 미니 시리즈 설교로 구성해도 좋을 것이다.

예화 아이디어 

힐러리 클린턴의 2016년 대선 캠페인 슬로건 중 하나는 “I’m with Her(나는 그녀와 함께한다)”였다. 이 문구는 배지와 표지판, 티셔츠에 쓰였고, 집회에서 외쳐졌으며, 소셜 미디어 프로필에도 사용되었고, 결국 투표로 증명되었다.

예수님께서 성전 지도자들과 권위 문제로 논쟁하실 때, 사실상 “나는 그(세례 요한)와 함께한다”라고 말씀하고 계신 셈이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비유는 우리가 누구와 함께하는지는 말이 아니라 순종의 행동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요한과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습이며, 우리 역시 그렇게 살아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