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는 그리스도인 디아스포라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를 마무리하며, 주요 주제 중 하나인 “신앙을 위한 고난”을 다시 한번 언급합니다. 이때 그는 그리스도인이 겪는 고난에 종말론적 의미를 부여하는 동시에, 그 고난을 견뎌내는 이들을 향한 약속을 건넵니다.
이번 주일 서신서 본문에는 여러 윤리적 권고가 담겨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13 말씀에서 베드로는 독자들에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koinoneite)” 것으로 “즐거워하라(chairete)”고 권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권고를 통해 “그들이 예수님을 위해 겪는 고난”을 “예수님이 친히 당하신 고난”과 연결 짓습니다. 그리고 이 신비로운 연합 덕분에, 그리스도인들이 구세주께서 겪으신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기쁘게 여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베드로전서 5:6 말씀에서 그는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krataian cheira) “겸손하라”(tapeinothete)고 촉구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허락하시는 모든 상황에 순복하라는 권면이며, 여기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예수님을 위해 견디는 고난도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어서 7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너희 염려(merimnan)를 다 주께 맡기라(epiripsantes)”고 권면합니다. 유진 피터슨은『메시지 성경(The Message)』에서 이 구절을 “하나님 앞에서 근심 걱정 없이 살라”는 초대로 의역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양자 된 자녀들에게 그들을 가장 무겁게 짓누르는 것들을 기꺼이 하나님께 맡기라는 부르심입니다.
베드로는 8-9절에서 더 나아가, “근신하라(nepsate) 깨어라(gregoresate) …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stereoi) 그를 대적하라(antistete)”며 또 다른 윤리적 권고를 제시합니다. 베드로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이 온갖 교묘한 방식으로 다가오는 악한 자의 끊임없는 유혹을 항상 경계하고 대적할 것을 촉구합니다.
여기서 이번 주 주일 서신서 설교자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두 가지 설교 방향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베드로 사도가 제시한 근거를 짚어줌으로써, 회중이 그 윤리적 권면에 순종하도록 권면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설교자들은 베드로와 뜻을 같이하여 청중에게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4:13)고 선포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고난 중에도 기뻐해야 할 분명하고도 강력한 이유가 됩니다. 이는 결국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이, 정해진 시간의 끝에 그분이 다시 오실 때 기쁨으로 넘쳐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설교자들은 (제가 하려는 것처럼) 윤리적 권면에서 시작해,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그 권면에 결코 순종할 수 없다는 솔직한 고백으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양자 삼으신 자녀들을 깊이 돌보신다는 위로와 격려가 있다고 하더라도(베드로전서 5:7), 과연 누가 모든 염려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길 수 있겠습니까?
사실, 청중에게 그저 “근신하라 깨어라”(베드로전서 5:8) 하고 권면하기만 하는 설교는 격려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낙심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대적인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그리스도인들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권면을 던지는 것은, 의도치 않게 수많은 성도가 이미 짊어지고 있는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짐에 돌 하나를 더 얹는 일밖에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자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사나운 악마의 유혹에 저항할 수 없는 우리의 본질적인 한계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자신과 청중을 향해, 그 누구도 자신의 힘만으로는 믿음 위에 굳게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시인할 수 있습니다(베드로전서 5:9).
성령께서는 이러한 설교를 통해, 베드로가 오늘 본문만 아니라 베드로전서 전체를 마무리하며 선포하는 영광스러운 축복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찬양합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Theos pases charitas), 곧 너희를 부르사 영원한 영광(alonion doxan)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pathontas oligon)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katartisei) 강하게 하시며(sthenosei) 굳건하게 하시며(sterixei)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themeliosei).”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전통적으로 베드로가 언급한 일들이 미래에,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여겨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해는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는 해석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5장 10절에서 미래 시제 동사를 사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독자들에게 준 윤리적 권면을 고려할 때, 설교자들은 그가 그리스도처럼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도우심의 약속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고 논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 중 그 누구도 자신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베드로전서 4:1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굳건한 힘을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당하신 그 고난에 조금이나마 동참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영광스러운 특권임을 기쁨으로 고백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백성이라 할지라도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데 늘 실패하곤 하기에(베드로전서 5:7),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신다는 희망은 아득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양자 삼으신 우리를 굳건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들어, 마침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돌보심(melei)을 신실하게 나타내실 것임을 확신하며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베드로가 이 편지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고난이 세상과 권력자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가하는 박해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고난을 유혹에 맞서라는 권고와 밀접하게 연결함으로써, 유혹 역시 고난의 핵심적인 일부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5:10 말씀에서 고난받는 독자들에게 몇 가지 아름다운 약속을 들려줍니다. 먼저 그는 그 고난이 “잠깐(oligon)” 지속될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서신 곳곳에서 그리스도인의 고난을 자주 언급하는 것을 보아,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따르느라 극심한 고난을 겪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러한 고난이 영원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우리 삶의 최종 선언이 될 수 없습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잠깐”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더 나아가, 베드로는 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예수님을 따르고자 애쓰는 고통 받는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이 은혜로 도우실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베드로는 본문의 다른 곳에서도 하나님을 권능의 하나님(베드로전서 5:6, 11)이자, “모든 은혜의 하나님”(베드로전서 5:10)으로 표현하며, 나아가 그분이 양자 삼으신 자녀들을 “돌보시는 분”(베드로전서 5:7)이라 덧붙입니다.
베드로전서 5:10에서 베드로는 바로 이 하나님께서 자녀 삼은 이들을 하나님이 “굳건하게”(sterixei) 하실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고난받는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실 뿐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려는 우리의 용기와 결단 또한 견고히 다져주실 것임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더 나아가,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주님의 백성을 “강하게 하실”(sthenosei) 것을 강조합니다. 『메시지 성경(The Message)』은 이를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백성들을 “완전히 일어서게 하실 것”(feet for good)으로 의역합니다. 신앙 때문에 겪는 유혹과 고통이 제자들을 넘어뜨릴 수는 있으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인해 우리는 다운될지언정 완전히 패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터 위에 견고하게 하실 것(themeliosei)”을 약속합니다. 유혹이나 다른 어떤 고난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삶의 최종 선언이 되실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삶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완성을 간절히 신음하며 기다리며 온 창조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역사의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의 자녀들을 붙들어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가 이번 주일 서신서 본문뿐만 아니라 베드로전서 전체를 11절의 격정적인 찬양으로 매듭짓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권능이(kratos) 세세무궁하도록 [하나님께] 있을지어다(tous aionas ton aionon).” 악한 자와 그의 하수인들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괴롭히기 위해 제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지라도, 궁극적인 권세와 권위는 그들이 아닌 우리의 전능하신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결국 최종 결정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예화
앨런 페이튼의 소설 《대지여, 울어라》에 등장하는 스티븐 쿠말로(Stephen Kumalo)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사역하는 겸손하고 경건한 목사입니다. 그는 한 친구에게, 그 마을에서 자랐지만 요하네스버그로 떠난 뒤 소식이 끊겨버린 한 젊은 여성의 운명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무푼디시(목사님), 저는 그리스도인이 고통에서 벗어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우리 주님께서도 고난을 겪으셨잖아요. 저는 그분이 고난받으신 목적이 우리를 고통에서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견디는 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라고 믿게 됐어요. 고통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분은 아셨으니까요.”(강조는 필자 주)
베드로전서 4:12-14, 5:6-11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