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겠지만, 가끔 히브리어나 그리스어의 특정 핵심 단어들이 모든 성경 번역본에서 늘 일관된 하나의 단어로 통일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독자들이 번역 성경을 읽을 때 해당 구절에 그 단어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항상 알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떤 단어들은 의미가 워낙 풍성해서 문맥에 따라 매번 다르게 번역되기도 합니다. 히브리어 단어 ‘헤세드(chesed)’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이 단어가 지닌 다채로운 뉘앙스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단어를 그 어떤 언어에서도 찾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사실 다른 언어에서도 이런 사례를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어에는 ‘gezellig’라는 단어가 있고, 독일어에는 이와 유사한 ‘gemütlich’ 또는 ‘Gemütlichkeit’가 있습니다. 네덜란드나 독일의 원어민들은 이 단어를 듣는 순간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 풍성한 의미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단 하나의 영어 단어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두 단어 모두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편안하고 아늑하며, 포근하고 따뜻하며, 정겹고 친근한, 마음이 느긋해지는 그런 곳 말입니다. 여러분이 ‘gezellig’하거나 ‘gemütlich’한 곳에 있다면, 그 느낌을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헤세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단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곧 야훼의 성품을 나타내는 핵심 단어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친절’(kindness)이나 ‘인자’(lovingkindness)로 번역되곤 합니다. 때로는 단순히 ‘사랑’(love)으로, 또 어떤 경우에는 ‘은혜’(grace)나 ‘자비’(mercy)로 번역되기도 하며, NIV 성경을 비롯한 여러 번역본의 시편 100편 마지막 구절에서는 ‘신실함’(faithfulness)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헤세드가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가장 핵심적인 속성입니다. 또한 헤세드는 시편을 비롯한 성경 곳곳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힙니다. 시편 100편의 권면처럼 우리가 노래와 찬양으로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설 때, 우리 마음을 가장 뜨겁게 북돋우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헤세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슨 이유로 이 성품이 하나님의 필수불가결한 특성인 것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이 성품이 우리의 구원으로 이어지는 가장 직접적인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헤세드는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죄와 비참함 속에 우리를 내버려 둘 수 없으셨던 하나님의 바로 그 마음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샬롬(peace)’을 망쳐버린 직후 그들을 찾아 나서셨고, 그들을 발견하자마자 즉시 구원의 계획을 선포하셨던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이 헤세드에 담겨 있습니다.
이 단어를 ‘신실하심(faithfulness)’으로 번역한 번역본들이 틀린 것이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처럼 끊임없이 어리석고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는 이들을 향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끈기 있는 인내(stick-to-itiveness)’가 바로 헤세드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향해, 혹은 그들의 뒤를 이은 모든 인류를 향해 “다 지옥에나 가버려라, 정말로!”라고 외치고 싶은 유혹을 느끼신 적이 있었다면, 그런 모든 순간마다 하나님을 우리 곁에 머물게 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에서 사도 바울은 실로 놀라운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우리가 일상에서 ‘친절(kindness)’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대개 (좋은 의미에서)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을 떠올립니다. 이때의 친절은 ‘착함(niceness)’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착함은 곧 ‘예의 바름’(politeness)의 한 형태이기도 합니다. 친절은 주변 사람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가꾸어 주며, 인생 여정을 한결 수월하게 해주는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이 ‘친절’이라는 단어를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받고 죽임 당하신 예수님의 사역에 적용하는 것을 보게 되면, 우리는 이 단어에서 엄청난 위력을 느끼게 됩니다! 바울은 우리를 죄와 죽음의 속박에서 구원하는 모든 구속 사역의 기초에 구약 성경의 헤세드, 즉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랑(loving-kindness)’이 자리 잡고 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일 때, 즉 비유적으로나 어떤 면에서는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문 안으로 들어설 때 우리가 찬양을 부르는 이유는 우리 하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100편은 총 150편의 시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시이자 가장 짧은 시 중 하나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수많은 히브리 시와 노래 중에서 가장 단순한 시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예배를 향한 아주 직설적인 부름인 셈입니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 실로 엄청난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심을 상기시켜 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속주이심을 일깨워 줍니다. 창조와 구속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거대한 두 가지 주제입니다. 시편 100편은 이 짧은 몇 마디 안에 그 방대한 내용을 모두 녹여냈습니다. 그리고 시편의 맨 마지막에 헤세드라는 단어를 엮어 넣음으로써, 하나님의 완전한 성품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으로 고작 서른여섯 단어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가 이 정도라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예화 아이디어
제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설교 세미나에서는 폭넓은 독서가 설교의 창의성을 높이는 데 어떻게 기여하는지 살펴봅니다. 특히 설교 역량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문학 장르 중 하나는 아동 문학과 청소년 소설을 추천하곤 합니다. 지혜로운 설교자들은 케이트 디카밀로(Kate DiCamillo), 게리 슈미트(Gary Schmidt), 캐서린 패터슨(Katherine Paterson), 콰메 알렉산더(Kwame Alexander)와 같은 작가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이들은 쉽고 명료하면서도 매우 깊이 있는 글을 쓰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 세미나 동료인 닐 플란팅가(Neal Plantinga)가 말하는 “제2의 단순성(second simplicity)”입니다. 이는 단순히 사물의 가장 기초적인 단계를 넘어서서 마주하게 되는 단순성입니다.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반짝반짝 작은 별”의 단순한 선율을 서툴게나마 연주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러나 모차르트 같은 위대한 작곡가가 이 선율을 바탕으로 변주곡을 작곡했을 때, 우리는 단순함과 복잡함이 공존하는 경이로운 음악을 만나게 됩니다. 그 정교함을 통해 원곡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만드는 ‘제2의 단순성’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시편 100편도 이와 같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시편은 “반짝반짝 작은 별”만큼이나 단순한 선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유치원생을 위한 찬양 안내서만큼 단순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시편에는 깊은 복잡성이 깃들어 있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우리가 왜 그분을 찬양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한한 자비와 은혜로 우리 곁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담긴 모든 의미를 새롭게 깨닫도록 이끌어 줍니다. 이것이 바로 ‘제2의 단순성’이며, 이러한 점에서 이는 실로 깊고도 심오한 단순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편 100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