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질문, 그리고 관찰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이 말씀은 여러 상황에 적용될 수 있지만, 이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배반당하실 것, 그들을 떠나실 것, 그리고 가장 충성된 제자 중 하나인 베드로가 그를 부인할 것이라는 예언적인 선언 바로 뒤에 나옵니다. 다시 말해, 제자들은 자신의 잘못 때문에 괴로워할 뿐만 아니라, 늘 곁에 계시던 예수님의 부재를 경험하며 큰 혼란에 빠지게 될 상황인 것입니다.
근심하는 마음을 위한 예수님의 처방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예수님은 그들에게 믿으라고 권고하십니다 (혹은 아래 본문 비평에서 논의하듯, 그들이 누구를 믿고 있는지 그 대상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이렇게 믿음이라는 소독약을 바르신 후, “소속감”이라는 약속으로 상처 입은 마음을 싸매 주십니다.
예수님은 비록 떠나시지만 제자들을 잊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자신과 함께 있을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오셔서 그들을 데려가실 것이며, 아버지와 함께하는 영원한 집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비록 집이라는 이미지가 사용되지만, 예수님께서 하시는 하늘의 준비는 단순히 건물을 짓는 시공자로서의 건축 사업이라기보다는, 우리를 구원으로 중보하시는 구원론적 사역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물론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신 말씀으로서 이 땅에 오신 순간부터 수행해 오신 동일한 사역입니다. 그리고 그가 가시는 길은 단순히 문자적인 십자가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십자가적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 이미 그 길을 알고 있다고 말씀하신 이유도 바로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살펴보았듯, 예수님은 양들의 문이 되시기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과 아버지를 깊이 연결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이십니다. 제자들의 근심하는 마음에는 예수님과 여호와 하나님을 영구적으로 이어주는 닻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사실 계속해서 그렇게 해 오셨고, 아마 그래서 빌립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을 것입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도 아직도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내가 행한 모든 일과 전한 모든 말씀 속에 아버지의 임재가 드러나 있지 않느냐!” 믿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은 이미 그들 앞에 있으며, 이제 그저 붙잡고 의지하기만 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나는 예수님 안에 아버지가 거하신다는 이 표현이, 바울이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신다고 설명하는 방식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임재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 오늘 본문이 우리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우리 안에도 성령이 거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예수님이 지금 우리 곁에 육신으로 계시지는 않지만, 성령의 강력한 임재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해 줍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기도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하나님의 일을 이루고자 할 때, 우리는 “이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12-14절)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그 일을 행할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영화 또한 하늘을 예비하는 사역의 일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삶을 살고자 할 때,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믿음으로 변화되어 그분의 임재의 열매를 맺으며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동행할 때, 우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 안에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위대해질 것이며,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하늘에서는 그리스도의 명성을 드높이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이 세상을 향한 자신의 선하심과 사랑의 목적이 당신의 백성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 가운데 영원히 거하시도록 자신이 떠나야 한다고 강조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하늘을 준비하는 사역의 일부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를 모든 지식과 믿음으로 인도하시고 성화의 과정을 통해 변화시키시는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가장 위대한 일을 이루십니다.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게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훗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아버지께로 인도하실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며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모습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이 진리를 가능한 한 깊이 믿고 깨닫고자 하며,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주님의 일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본문 비평
1절 하반절에 나오는 두 번의 “믿다”라는 표현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명령형으로 이해하여 제자들에게 믿으라고 명하시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단순한 직설법으로 “너희는 믿고 있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첫 번째는 질문으로 이해하여 “너희는 하나님을 믿느냐? 또 나를 믿으라”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현대 번역가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 전체 맥락을 고려할 때 둘 다 명령형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판단합니다.
예화 아이디어
Apple TV 드라마 트라잉에는 입양을 준비 중인 젊은 영국인 부부 제이슨과 니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프린세스라는 사춘기 소녀와 매칭되는데, 아이를 집으로 데려오려던 찰나 그녀에게 타일러라는 남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집에 방이 부족해 두 아이를 함께 입양할 자격이 되지 않았고, 결국 남매가 생이별하는 가슴 아픈 장면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특유의 기분 좋은 설정 덕분에) 타일러가 몰래 부부의 자동차 트렁크에 숨어 들어옵니다! 다음 날 사회복지사가 타일러를 데리러 오기로 한 상황에서, 제이슨과 니키의 온 가족은 타일러가 함께 살 수 있도록 복지사를 설득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애써 없는 방을 새로 만들고, 음식을 잔뜩 차려내며, 온 가족이 현관 앞에 모여 타일러가 이 가족의 일원으로서 얼마나 잘 돌봄을 받게 될지를 필사적으로 증명하려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신다”고 하실 때, 사실 하늘에는 이미 준비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준비한다”는 표현은 단순한 활동을 넘어서, 깊은 돌봄의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님과 함께 하늘에 속한 존재이며, 그 사실을 보여주듯 성령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곳 지상에서도 우리와 함께 거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4:1-14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