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장에 걸쳐 제삼자의 서사, 즉 타인의 시선으로 요셉의 이야기를 읽어온 우리는, 마침내 이 장에 이르러 요셉이 그동안 펼쳐진 사건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지 간절히 알고 싶어집니다. 드디어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줍니다.
그는 형들에게 잔혹하게 학대당했던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노예로 살아야 했던 삶, 보디발의 아내가 한 유혹을 뿌리치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던 일에 관해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그 기나긴 세월에 관해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비록 노예였지만 보디발이 자신의 온 집안을 맡길 정도로 자신이 얼마나 유능했는지 자랑할 수도 있었습니다. 감옥에 갇혀서도 고위 관직자들의 꿈을 해석해 준 일, 비록 보잘것없는 이방인에 불과했지만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온 이집트의 총리가 된 이야기를 뽐낼 수도 있었습니다.
분노를 터뜨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성공을 자신의 정당함을 입증할 기회로 삼아 자랑할 수도 있었습니다. 형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내가 뭐랬어요. 형들이 나한테 절하는 꿈을 꿨다고 했을 때 기억나요? 똑똑히 보세요. 결국 내가 말한 대로 됐잖아요.”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느냐는 매우 중요하며, 요셉은 실제로—사실에 기반하여—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가 요셉 자신의 입을 통해 나올 때, 그가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첫째, 그는 경계 태세를 풉니다. 과거에는 울음을 삼키거나 자리를 피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도록 내버려둡니다. 그는 방에 있던 다른 모든 사람을 나가게 한 뒤, 이집트의 문화와 언어 뒤에 숨지 않고 모국어로 형들에게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밝힌 후 이렇게 묻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십니까?” 다 자란 성인 남성이 여전히 아버지가 자신의 성공을 알아주고 자랑스러워해 주기를 바라는, 그 솔직하고도 겸손한 마음이 묻어납니다. 그러고 나서 요셉은 형들에게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라고 말합니다. 그는 베냐민의 목을 껴안고 울며 관습에 따라 입을 맞춥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형들에게도 똑같이 행합니다.
둘째, 그는 가족을 축복하기 위해 애씁니다. 그는 이집트 변방의 땅을 가족에게 제안하며 “나와 함께 살아요. 내가 보살펴 드릴게요!”라고 말합니다. 바로 왕이 이 소식을 듣고 가나안에 있는 야곱을 모셔 오도록 수레와 물품을 보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야곱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말하지만, 그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수년 전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고백해야만 했습니다. 화해는 형제들 사이에만 머물 수 없었습니다. 온 가족, 모든 세대가 함께 회복되어야 했습니다.
셋째, 그는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로 감싸인 진실을 말합니다. 그는 형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는 “내가 형님들이 이집트에 판 아우 요셉입니다!”라는 진실을 피하지 않고 솔직히 다 털어놓으면서도 또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진실은 이것입니다. ‘이 과정은 정말 고통스러웠고, 형님들의 악의에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 가득한 섭리가 더해졌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나를 형님들보다 먼저 보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습니다.” 그사이에 흘러간 20년의 고통과 슬픔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고, 분명한 목적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그 세월이 고통스럽지 않았다거나 슬프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고통과 슬픔을 하나님의 거대한 섭리 안에서 바라본 것입니다. 요셉은 마음의 빗장을 풀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며, 하나님의 사랑 가득한 섭리로 감싸인 진실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모든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하나님께서 한 세대를 그다음 세대보다 앞서, 또 그다음 세대보다 앞서, 또 그다음 세대보다 앞서 보내시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의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경계심을 풀고,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자 마음을 쓰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감싸인 진실을 전하는 것입니다.
모든 가정과 교회, 그리고 공동체에는 이와 같은 이야기들이 흘러갑니다. 진솔하고 솔직하게, 그리고 화해를 향해 나아가며 진실을 말할 때, 우리는 인간의 모든 노력에는, 심지어 교회를 세우는 것과 같은 거룩한 일일지라도, 시련과 난관, 갈등과 실망의 순간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이야기들을 어떤 방식으로 들려주는가, 즉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진리를 어떻게 전하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한 주석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눈에 보이는 기적이나 명백한 신적 개입, 계시뿐 아니라, 연약하고 깨어진 인간의 선택과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과정에도 드러난다.” 우리 역시 요셉처럼, 우리 자신의 삶을 이러한 고백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요셉처럼, 우리 역시 가족과 교회, 공동체의 허물과 실패, 그리고 신실함과 기회, 성장의 이야기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감싸인 진실로 전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앞서 보내신 모든 이들의 삶을 기억하며 감사할 수 있을까요?
예화 아이디어:
만약 여러분의 교회가 자유롭게 간증을 나누는 분위기라면, 이번 주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먼저 보내주신 이들을 통해 삶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했던 이야기를 성도 몇 분에게 부탁해 듣기에 더없이 좋은 주일이 될 것입니다.
만약 성도들이 직접 참여하는 예배를 원하신다면, 작은 카드를 주보에 끼워 넣거나 바구니로 돌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설교가 끝난 후, 성도들에게 자신을 교회로 이끌었거나 힘든 시기에 믿음을 굳건하게 해 준 사람의 이름을 그 카드에 적도록 권유할 수 있습니다. 작성한 카드는 강단이나 성찬상 등 교회의 전통과 예배 공간에 맞게 올려놓도록 안내할 수 있습니다.
혹은 조금 더 격식 있는 예배 환경이라면, 교회의 역사를 함께 나누는 기회로 삼아보십시오. 교회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예배당을 건축하거나 매입했을 때, 그동안 거쳐 간 다양한 사역들과 목회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입니다. 이때, 힘들었던 지난날에 대해 함께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고난의 계절 속에서, 혹은 그 고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성도들과 나누어 보십시오.
창세기 45:1-15 주석